[북한 핵동결 해제 검토 의도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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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이 북한에 제공키로 한 경수로 발전소의 건설 지연에 따른 보상을 하지 않을 경우 핵동결(核凍結)해제를 검토하겠다고 북한이 16일 밝힌 것은 조만간 시작될 미국과의 대화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일단 경수로 발전소 제공의 근거인 제네바 합의를 유지하겠다고 대응했지만, 북한과의 협상에선 검증 우선 등 '미국식 잣대' 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이어서 북.미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일단 맞불을 놓자=북한이 이번에 중앙통신을 통해 밝힌 내용은 그동안 경수로와 관련해 표명한 입장 가운데 가장 강경하다.

지난 2월 23일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을 보상하라' 는 선에서 언급했지만 이번엔 '흑연 감속로를 되살리겠다' 고 한걸음 더 나갔다.

이는 한마디로 제네바 합의의 파기와 함께 핵무기 개발로 가겠다는 의사 표시다. 그러면 북한이 이를 실행할 수 있을까. 정부 당국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정부 당국자는 "그럴 경우 우선 매년 공급되는 중유 50만t의 제공이 끊어져 30만㎾ 이상의 전력 생산에 차질이 오는 데다 군사적 대치까지 이어지는 긴장 국면이 조성되면 식량난 해결.경제 개혁 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고 말했다.

아주대 정종욱(鄭鍾旭)교수는 "경수로 건설 지연을 카드로 삼아 미국을 상대로 전력 지원 문제를 본격 제기하려는 의도" 라고 말했다. 때문에 북한의 이번 발언은 협상 초기에 기선을 제압당하면 경제적 실리도 못얻고 투명성을 앞세운 미국의 검증 압력만 받게 된다는 점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 전기를 달라=북측은 이번에 '미국이 제공하고 있는 50만t의 중유는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보상이 아니다' 고 밝혀 보상은 전력 지원임을 시사했다. 북한은 현재 경수로에서 나오는 2백만㎾와 별도로 남측에 2백만㎾(1차분 50만㎾)를 요청한 상태다.

안성규 기자

◇ 흑연 감속로=원자로는 핵 연료인 우라늄이 분열하면서 발생하는 열로 물을 데워 발전한다. 그런데 핵 분열을 방치하면 너무 빨리 분열, 폭발하게 되므로 감속을 해야 한다.

흑연 감속로는 감속제로 흑연을, 원료로는 순도가 높은 천연 우라늄을 사용한다. 흑연 감속로의 장점은 가동을 수시로 멈춰 원료를 교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때 사용후 핵 연료의 순도가 높아 쉽게 무기급 플루토늄이 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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