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10대산업 키우자] 1. 시리즈를 시작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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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경제를 먹여살릴 산업은 무엇인가. 경기침체 속에 반도체.철강 등 그동안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수출이 줄고 성장기반도 위축되고 있는 한국 경제의 위기를 새로운 주력산업 육성으로 타개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한국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전통산업은 한 단계 도약시키면서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산업을 찾아 키우자는 것이다.

본지는 삼성경제연구소와 공동으로 한국경제를 먹여살릴 10대 업종을 선정, 한국의 실력을 진단하고 외국의 최강기업을 벤치마킹해 해법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삼성이 만드는 반도체도 전체 품목의 절반이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

이학수(李鶴洙)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이 최근 기자들에게 털어놓은 얘기다. 그는 반도체 제조기술이 다른 나라보다 한세대 앞선다는 삼성조차 가격 하락의 역풍 앞에 흔들리는 현실을 걱정했다.

이런 걱정은 비단 삼성만의 것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고민이요, 과제다. 그동안 구조조정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지만 세계 경제가 잠시 주춤하자 우리 경제는 수출이 줄고 성장률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국의 주력산업들이 경기 탓만으로는 돌릴 수 없는 체력저하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올들어 환율이 크게 오른 덕에 국산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좋아졌는 데도 수출이 감소하고 경제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것은 한국 산업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 라고 말했다.

◇ 허약해진 산업기반=한국경제는 수출로 먹고 산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10년간 27%에서 40%로 커졌다.

그러나 한국의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세계시장 점유율 5대 품목에 드는 한국 제품은 1994년 5백55개에서 99년 4백82개로 줄었다.

더 큰 문제는 한국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10대 주력산업의 체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반도체.자동차.컴퓨터.선박.석유화학 등 5대 수출품목 가운데 선박과 자동차를 제외하곤 올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여도가 가장 큰 반도체와 컴퓨터는 4월까지 수출이 모두 13% 이상 감소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주요 산업의 경쟁력을 기초연구.제품개발.생산공정.마케팅 등 4개 부문으로 나눠 선진국과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네부문 모두 1백점 만점을 받은 것은 반도체 뿐이었다. 나머지 산업들은 생산공정에서만 80점 이상을 받았을 뿐 다른 부문에서는 20~70점대의 빈약한 평가를 받았다.

중국의 추격도 위협적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의 수출시장인 미국에서 한국을 추월한 지 오래다. 산업자원부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자동차.조선.철강.유화 등 한국이 기술력에서 앞서고 있는 분야도 2010년이면 추월할 전망이다.

산업연구원 김도훈 산업정책실장은 "구조조정과 대외개방은 한국기업들의 경쟁환경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이런 노력이 경쟁력 향상으로 꽃피기 전에 세계화의 파고가 한국의 기간산업들을 뒤흔들고 있다" 고 진단했다.

◇ 유망주도 찾기 어려워=운동경기에서는 주전 선수들이 부상을 입거나 체력이 떨어지면 유능한 후보선수들이 투입된다. 주력산업의 체력이 바닥난 한국 경제도 새로운 유망주를 찾고 있다.

정보통신과 디지털 가전 분야 등에서 가능성은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동통신 단말기 등 정보통신분야의 생산액은 1백70억달러로 세계시장의 3%(9위)를 차지했다. 디지털가전 분야에서도 벽걸이(PDP)TV 양산체제를 세계에서 두번째로 갖췄다. 그러나 아직은 생산력을 확보한 정도며, 기술.마케팅 등에서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테헤란로와 코스닥시장을 달구었던 닷컴 산업과 e-비즈니스 바람이 식어버리고 인력과 자본이 썰물처럼 빠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삼성경제연구소 고정민 수석연구원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정보기술(IT)분야인 디지털 가전.콘텐츠.전자상거래 등의 분야를 놓치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없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공동집필 : 이용택 홍승일 기자

김정호 고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다음 회는 업종별 분석 첫회로 정밀부품산업을 다룹니다. 국내 정밀부품산업의 실태와 세라믹 부품 분야의 세계 최고기업으로 꼽히는 일본 무라타제작소 벤치마킹을 두차례로 나눠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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