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출판] '위스키 성지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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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영국.미국에서 발달하였으며, 맥아를 주원료로 하여 이것을 당화. 발효시킨 후 증류하여 만든 술. " 위스키에 대한 사전적 설명이다.

이런 실용적 언어에는 위스키의 향과 취기가 배어들 틈이 없다. 그러나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사진> 가 위스키의 고향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답사해서 서술한 『위스키 성지여행』은 읽는 이에게 위스키 향이 살아나는 정보로 다가온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 이상도 언어 이하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놓고 이야기 하고, 그 한정된 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

삶의 한정된 틀을 단숨에 뛰어넘게 하는 이미지의 해방자로서의 술. 이와 함께 하루키는 이 책에서 위스키를 그 어원인 '생명의 물' 로 돌려놓고 있다.

여행 하면서 맛본 제각기 개성 있는 위스키의 풍미와 독특한 뒷맛, 그리고 위스키 고장에서 알게 된 사람들의 인상을 위스키 같은 언어로 꿈꾸듯, 취한듯 적고 있다.

때문에 이 책에서 위스키에 대한 실용적인 정보를 얻으려는 것은 잘못이다. 위스키를 빌어 자연 풍광과 술집 풍경, 술을 빚고 마시는 사람들, 결국은 나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머리로만 이러니저러니 생각해선 안되는 거야. 이런 저런 설명은 필요없어. 가격과도 상관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싱글 몰트는 햇수가 오래될수록 맛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서 얻는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거든. 증류를 해서 더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덜해지는 것도 있어. 그건 다만 개성의 차이에 지나지 않아. "

위스키 주조에 평생을 바친 사람에게 하루키가 들었다는 이 말은 어찌 위스키에만 해당되겠는가. 갇힌 세상이 아니라 열린 세상에 대한 우리의 꿈은 아니겠는가.

같이 여행하며 부인 요오코가 찍은 풍광과 술집 사진들도 함께 실려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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