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戰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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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무릇 전쟁을 하기 전에 전쟁 시뮬레이션을 해야 하고(夫未戰而廟算), 승리를 확신하는 자는 이길 계책이 다양하다(勝者得算多).” 춘추시대 손무(孫武)가 쓴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서론격인 ‘계획편(計編)’의 결론이다. 여기서 묘산(廟算)은 임금이 신하들과 정사를 의논하던 묘당(廟堂)에서 세우는 전쟁 계획, 즉 워 게임(War Game)을 뜻한다. 묘산에서 이기는 것을 묘승(廟勝)이라고 한다. 손무의 전쟁론은 간단하다. ‘선승이후전(先勝而後戰)’, 이긴 후 다시 싸워라(贏了再打, 영료재타)는 논리다.

“먼저 전략을 세우고, 외교전을 펼치고, 야전을 펼치고, 그 다음에 공성전을 펼친다(上兵伐謀,其次伐交,其次伐兵,其下攻城).” 손무가 ‘모공(謀攻)편’에서 펼친 전쟁 방법론이다. 미국이 전쟁을 수행할 때도 펜타곤에서 전쟁계획을 수립하고, 국무부가 외교전을 펼쳐 연합국의 지지를 얻는 순서를 충실히 따른다.

전쟁이 잦았던 중국에는 예로부터 전쟁 이론을 담은 병서가 많았다. 강태공(姜太公)의 『육도(六韜)』를 시작으로, 한(漢)나라 개국공신 장량(張良)의 스승 황석공(黃石公)이 지었다는 『삼략(三略)』을 비롯해 저자 미상의 『삼십육계(三十六計)』까지 모두 현대전에 적용해도 손색없는 책들이다.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명분보다 승리가 우선이다. “나라는 바르게 다스리고, 군사는 속임수로 부린다(以正治國,以奇用兵)”는 말이 『노자(老子)』에 나온 이유다. 상승(常勝) 장군은 영웅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길 전쟁만 했다. 먼저 적이 이기지 못하도록 하면서 적군에 승리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을 뿐이다. 반면에 “고금의 명장은 다수가 패장이다(古今名將, 多是敗將)”란 말이 있다. 항우(項羽)와 관우(關羽)가 대표적인 명장이면서 패장이다. 고매한 인격의 그들은 승리가 적었어도 이길 수 없는 전투에 나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6·25 전쟁 60주년인 올해 준비 없이 전쟁의 참화(慘禍)에 휩쓸렸던 세대들이 들려주는 전쟁담이 국방의 중요함을 뼈저리게 일깨워준다. 『좌전(左傳)』에 ‘생활이 편안하면 위험을 생각하고, 생각하면 준비를 갖추어야 화를 면할 수 있다(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은 아직 휴전(休戰) 중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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