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경정예산 편성 논란 누구 말이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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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동안 잠복했던 추가경정예산 편성 논의가 다시 부상했다.

지난 4일 열린 민주당과 각 부처 차관의 경제상황 점검 대책회의가 발단이었다.

일부 의원들이 추경편성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로 인해 5조원 정도의 추경편성 방침이 굳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정부와 여당은 바로 진화에 나섰다.

강운태 민주당 제2정조위원장은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이 없다" 고 해명했다.

진념(陳稔)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7일 "현 시점에서 추경편성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이르다" 며 "5조원 규모로 편성한다는 것도 공식 논의되지 않았다" 고 말했다.

이처럼 당정이 같은 입장을 보인 것은 앞으로 추경을 편성하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이라기보다 현 시점에서 추경편성 논란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가부채와 재정적자 규모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는 판에 추경을 편성할 경우 긴축으로 균형재정을 이루겠다는 정부 정책방향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날 논평에서 "시급한 실업대책과 지방경제 활성화, 건강보험 재정 지원 등을 위해 여야가 국회에서 머리를 맞대고 우선순위를 논의해야 한다" 고 주장해 추경의 필요성을 사실상 인정했다.

◇ 재원은 5조원=지난해 나라 살림살이를 하고 남은 세계(歲計)잉여금과 한국은행 잉여금이 추경의 재원이 될 수 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현재 4조5백55억원의 세계잉여금과 1조원의 한은 잉여금이 정부 장부에 들어와 있다" 고 밝혔다.

당정은 5월 말은 돼야 추경예산 편성 여부와 구체적인 내역을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陳부총리는 "5월 부가가치세 신고에 따른 세수(稅收)전망, 국민건강보험 적자 규모, 재해대책 예비비 규모와 5월 말까지의 경제상황을 종합적으로 점검한 뒤 추경편성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그래도 당정간 5조원의 여윳돈 용도에 대한 큰 논의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운태 제2정조위원장은 "추경을 편성할 경우 3조5천억원의 지방교부금 정산이 1순위이며, 의료보호 1.2종 환자 치료비에 대한 국고지원 정산과 국민건강보험 지원이 2순위, 실업대책은 그 다음" 이라고 말했다.

◇ 팽팽한 찬반 양론=한나라당은 추경편성이 정부의 긴축기조를 허물 뿐 아니라 균형재정 달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한구 한나라당 제2정조위원장은 "세계잉여금의 사용 1순위는 국채상환" 이라며 "정부.여당이 내세우는 용도는 추경을 편성해야 할 긴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고 주장했다.

정부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여야가 합의한 재정건전화특별법에도 세계잉여금은 지방교부금 정산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고 말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견해가 엇갈린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숙희 수석연구원은 "아직 경기가 회복되는 기미가 없고 재정적자가 크지 않은 상황에선 재정을 보다 유연하게 사용해 경기에 불을 지필 필요가 있다" 고 주장했다.

崔연구원은 특히 "지방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정산할 교부금 지급시기를 가능한 한 앞당기는 것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현재 경기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고 있으므로 경기 부양을 위해 추경을 편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1월 한국 정부에 "재정정책 수단으로 추경예산을 자꾸 편성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 권고한 적이 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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