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눈치보는 모성보호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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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6일 오후 민주당 의원총회.

"모성(母性)보호법 개정을 자민련이 반대하고 있다. 우리가 공동 여당의 뜻을 무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이를 미루고 있다. " (李相洙 총무)

비슷한 시간에 열린 자민련 의원총회.

"자민련이 모성보호법에 반대하는 것처럼 비춰지는데 우리는 찬성이다. 다만 경제계가 우려하는 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 " (李完九 총무)

"몰매를 자민련이 맞고 있다. 반대하려면 철저해야 한다. 여성계는 우리당을 재벌 돈이나 받는 고리타분한 정당이라고 욕하고 있다. " (李在善 의원)

모성보호법 개정에 대한 민주당과 자민련의 혼란스런 모습이다.

국회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 신계륜(申溪輪.민주당 간사)의원은 "출산휴가 연장부분이라도 먼저 도입하는 등 타협안을 만들기 위해 여성.노동계.재계와 접촉하겠다" 고 말했다. 여당 내 혼선은 더해졌다.

지난 24일 모성보호법의 실시 시기를 2년 늦추겠다는 당론을 뒤짚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당 전용학(田溶鶴)대변인은 국회 기자실을 돌며 "申의원의 말은 '아직은' 당론이 아니다. 정책위가 조만간 정리에 나설 것" 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딱부러진 언급이 없어 혼란은 계속됐다.

한나라당의 태도도 어정쩡하긴 마찬가지다. 여당이 '유예' 입장을 밝히자 뒤늦게 '즉각 실시' 쪽으로 당론을 정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야당이 밀어붙였다간 나중에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다" 고 말한다. 모성보호법의 즉각 시행을 주장하면서도 표결처리까지 강행하진 않겠다는 입장도 이런 발상에서 나왔다.

국민의 시각은 곱지 않다. 여야 정당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국회가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의식해 노동계와 재계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는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지난해 6월 환경노동위에 접수된 모성보호법 개정안이 정치권의 정략적 태도에 밀려 10개월째 한발짝도 못나가고 있다" 며 씁쓸해 했다. 여론 눈치보기 속에 모성보호법의 4월 국회 처리는 이날 여야 합의로 무산됐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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