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공무원 1년넘게 "못나가" 버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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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998년 10월 구조조정 당시 대기발령 통보를 받은 모 시청 직원 李모(58.5급)씨는 3년 가까이 사표를 내지 않고 버텨 지금까지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李씨는 시청측이 퇴직을 권고할 때마다 "결격사유를 대라" 고 따졌고, 시청측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 외에는 별다른 꼬투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근도 하지 않는 李씨는 매달 1백50여만원(수당 제외)의 봉급은 물론이고 석달에 한번씩 보너스를 받는다.

98년부터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는 지자체들이 당사자들의 버티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6월말까지 대기발령자에 대한 실태 조사를 벌인 뒤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 실태=전북 익산시는 98년부터 지난해까지 1백63명을 구조조정했다. 이중 자진 퇴직자 1백명을 제외한 63명은 대기발령 상태다. 63명 가운데 18명은 98년에 대기발령을 받아 자진퇴직 유예기간인 1년(99년 12월)을 넘긴지 오래다. 이들에게 지금까지 지급된 봉급은 모두 13억8천여만원. 49명이 대기발령 중인 군산시(98년 28명, 2000년 21명)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올 초 인사적체 해소를 위해 2, 3급 간부 세명을 대기발령했으나 이들이 반발하자 산하 연구기관에 파견 형식으로 발령을 내고 말았다.

올들어 ▶충남 40명▶부산시 23명▶인천시 14명▶울산시 6명▶경북도 9명 등 전국적으로 1백명 이상이 대기발령을 받고 대부분 출근하지 않으면서 월급을 받고 있다.

◇ 문제점=현행 지방공무원법이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어 뚜렷한 퇴출 사유가 없는 한 대기발령자에 대한 강제퇴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들 대기발령자는 보직만 없을 뿐 직급은 계속 유지해 승진한 후배들은 '대리' 라는 꼬리표를 달고 근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직급별 정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익산시의 경우 계장급 이상 간부 3백11명 중 직무대리 근무자가 39명이나 된다.

◇ 행자부=대기발령자에 대해서는 단체장이 '지방공무원 정원조례' 에 따라 직권 면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행자부 자치제도과 관계자는 "대기발령자들을 오랫동안 방치하는 것은 단체장의 직무유기인 동시에 구조조정 취지에도 어긋난다" 고 말했다.

장대석.김관종.엄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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