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파트, 프랑스 대통령 전용기로 파리로 이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의식을 잃는 등 한때 위독한 상태에 빠졌던 야세르 아라파트(75)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29일 프랑스에 도착했다. 아라파트는 파리 근교의 페르시 군병원에서 치료받을 예정이라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 병원은 외상과 혈액 관련 질병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으로 알려졌다. 아라파트를 치료해 온 의사는 "통상적으로 세균을 파괴해야 하는 혈구가 혈소판을 파괴하는 혈액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며 "혈액암.백혈병.패혈증 등과 관련한 정밀진단과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아라파트의 증세가 백혈병의 전 단계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앞서 이날 오전 아라파트 수반과 가족, 그리고 의료진을 태운 헬리콥터 2대가 요르단강 서안에 있는 라말라 자치정부 청사를 출발해 요르단 암만으로 향했다. 한시간여 만에 암만공항에 도착한 아라파트 일행은 프랑스가 제공한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파리로 이동했다. 군용 헬기에 오른 아라파트 수반은 시종 웃음을 머금은 채 팔레스타인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헬기 주변에 모인 팔레스타인 관리들과 군중은 아라파트의 이름을 연호하며 지지를 다짐했고, 아라파트는 손을 흔들어 답했다.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의 상징인 아라파트가 연금돼 있던 자치정부 청사를 벗어나 요르단강 서안 외부로 이동한 것은 2001년 11월 이후 거의 3년 만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28일 아라파트의 귀국을 보장한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아라파트의 병세가 악화되자 국내외 비난을 우려해 연금상태였던 아라파트의 해외 치료를 허용했다. 또한 그동안 아라파트의 해외추방정책도 바꿔 치료 후 라말라 청사로의 귀국을 막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아라파트의 해외 치료가 긴급히 추진됐다.

아라파트가 프랑스로 향한 것은 아랍권 국가들이 자국 내에서의 치료에 난색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28일 "해외 치료시 이스라엘이 귀국을 허용치 않을 것"이라며 간접적으로 아라파트의 이집트 입국을 거부했다. 범아랍 일간 알쿠드스 알아라비는 29일 "중동 문제에서'가장 공정한'태도였던 프랑스가 이번에도 용기있는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은 반이스라엘 또는 반정부 시위나 폭력이 발생하는 것을 두려워해 아라파트가 자국 내에서 사망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