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동의 중국世說] 공은 상관에게 위험과 책임은 자신이 떠 맡는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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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세워도 명예를 추구하지 않고, 패배해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進不求名, 退不避罪)” 손자병법의 地形篇에 나오는 명구다. 이는 지휘관에게 ‘결과나 상벌에 구애됨이 없이 목표 수행에 정진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규정해 준다. 그런가 하면 상관의 신뢰획득과 자신의 안전보호 전략으로서 더 빛을 발할 수도 있는 잠언이다.

당나라 德宗때 재상 李泌은 회골(위그루)족이 당과의 강화를 요청해 오자, 국가안위를 위해 회골족과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완강하게 반대하는 덕종을 설득한 후, 회골족과 회동하여,“회골족들이 당나라 황제 앞에 자신들을 신하라고 칭할 것” 등을 조건으로 하는 강화를 성사시켰다. 덕종은 이필에게 “어찌하여 회골족이 당신 말은 잘 듣는가?”물었다. 이필은 “이 모두가 폐하의 위엄에 의지해 이루어진 것이지 소신에게 어찌 이런 역량이 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덕종의 입은 가로 왈 자를 새겼고, 눈은 이필에게 보내는 신뢰로 온화하게 가늘어 졌다.

西漢 초에 田叔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섬기던 張敖가 황제살해 음모죄로 체포되자, 목숨을 두려워 않고 압송되는 장오를 수행하면서 모셨다. 후에 한무제는 그를 높이 치하하고, 魯國의 相國으로 임명했다. 당시 魯王이 백성들의 재물을 약취하는 등 폭정을 일삼자, 백성들이 이를 전숙에게 고했다. 전숙은 그들에게 오히려 50대씩 매를 친 후 “노왕은 너희들의 주군이 아니냐? 어찌하여 자기의 주군을 감히 고해바칠 수 있느냐? 고 호통쳤다. 이에 노왕은 부끄러워 하며, 전숙에게 거두어들인 재물을 백성들에게 돌려주라고 했다. 전숙은 이를 거절하면서 “아닙니다. 소신이 돌려주면 대왕은 악명이 높아지고, 소신만 명망이 높아집니다. 대왕께서 직접 돌려 주시지요.” 라고 했다. 이에 노왕은 감탄하여 전숙의 총명함과 용의주도함을 찬양했다.지체만 높을 뿐 통치에 대한 식견과 덕망은 바닥 수준인 군왕을 현명한 재상이 고차원의 시범지도로 망신을 주며 훈계한 사례다.

서양에서는 잉글랜드의 폭군 존 왕(King John)이 어느 대주교가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불렀다. 존 왕은 그에게 왕보다 호사한 생활을 한 죄로 세가지 질문에 답을 못하면 재산을 몰수하고 참수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주교는 2주일 말미를 얻어 집에 돌아와 양치기 하인에게 그 고민을 말하자, 양치기는 자신이 해결해보겠다며, 대주교와 똑같이 변장하고 존 왕을 만났다.

존 왕은 “내가 얼만큼 더 살수 있는가? 물었다. 양치기는 “대왕은 죽는 날까지 살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가슴 철렁한 우문 현답이다. 왕은 다시 “내가 말을 타고 얼마나 빨리 세계를 돌 수 있겠는가? 물었다. 양치기는 “ 대왕께서 해 뜰 때 말에 타고 다음날 해 뜰 때 말에서 내리면 24시간 만에 세상을 한 바퀴 돕니다.”라고 답했다. 다시 왕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물었다. 이에 양치기는 “대왕은 지금 저를 대주교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저는 대주교의 하인으로서 우리 주인과 저를 용서해달라고 온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재치의 섬광과 충일한 충성심이 화려한 왕궁을 초라하게 탈색시키는 순간이었다. 이 양치기의 총명함과 충성심에 폭군인 존 왕도 탄복을 하고, 대주교 사면은 물론, 양치기에게 평생 은화 제공을 약속했다.

이러한 인물들의 상관에 대한 희생정신과 공을 상관에게 돌리는 지혜는 우리 현대인들에게도 값진 교훈과 많은 시사 점을 던져준다. 사회에 귀감이 되어야 할 교장들이 매직을 하고, 돈 공천이 흥행되는 우리의 정치풍토를 바로잡을 처방은 아마도 중국 고전에서나 찾아야 할 듯 싶다.

최근 부산에서는 13세 꽃봉오리 소녀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성폭행 상습범에 희생되어 “하늘도 울었다”는 눈물의 영결식이 있었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들은 비슷한 사례인 “나영이 사건”때도 성범죄 대책이 시급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들 뒷북의 명수들은 아무런 조치도 없이, 세종시와 오는 6월 총선 표 계산에만 몰두하다가 다시 사건이 터지자 이제야 소급입법이라도 추진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말로는 국민을 섬기고 민생을 챙긴다는 우리 정부관리들과 정치인들에게도 西漢의 전숙이나 영국의 양치기와 같은 충성심과 책임감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긴 한숨만 춘설이나 녹이려는 듯 진하게 퍼져간다.

한형동 산둥성 칭다오대학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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