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23일 훈장받은 집배원 이남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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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많을 때는 주민들의 공과금을 하루에 40건씩 대신 내주기도 합니다. 어쩌다 짜증날 때도 있었지만 봉사한다는 생각에 기꺼이 맡아왔죠. "

전남 장성우체국 정보통신원(집배원) 이남규(李南圭.52)씨는 별명이 '동전 주머니' 아저씨다. 항상 동전을 넣을 손가방을 들고 다니기 때문이다. 이 가방은 李씨가 지역 주민들이 부탁한 전기세.수도세 등을 은행에 가서 대신 내주고 잔돈을 돌려줄 때 쓴다.

장성군 남면의 1천5백가구에 우편배달을 하는 李씨의 얼굴을 모르는 지역 주민은 거의 없다.

"남면에는 버스가 한시간에 한대씩만 다닙니다. 약국이나 은행에 한 번 가려고 해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죠. 워낙 낯이 익고 편하니까 우편물을 가지고 갈 때마다 저한테 심부름을 부탁합니다. "

심부름까지 하다 보니 우편물 배달시간도 다른 집배원보다 훨씬 더 걸린다. 3~4㎞씩 떨어져 있는 집집마다 우편물을 갖다주느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지만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9시가 넘어서야 일이 끝난다.

3년 전부터는 컴퓨터를 배워 짬짬이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나이 오십이 다 돼 컴퓨터 배우기가 쉽지 않았지만 사람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모르는 부분을 아들 딸에게 물어가며 공부했습니다. "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혼자 사는 노인들을 돌보고 소년소녀가장의 졸업식에 부모 대신 참석하는 등 어려운 이웃을 가족처럼 아껴왔다.

1977년 전남 장성군 진원우체국을 시작으로 집배원으로만 24년 넘게 일해온 李씨는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정보통신의 날인 지난 23일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그는 "퇴직 후에도 주민들이 꼭 필요로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고 말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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