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윈도] 'regret' 와 '유감'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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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군 정찰기 승무원을 둘러싼 미.중 외교전은 외교용어의 감칠 맛과 비법이 정교하게 펼쳐진 승부였다.

미국이 선풍기의 버튼을 낮춰가듯 regret→sorry→very sorry로 표현을 바꾸자 양국간 긴장의 바람은 강풍→약풍→미풍으로 줄어들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아직도 이 치열했던 말싸움에 대한 품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중에는 외교용어의 정확한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문제의식도 들어 있다.

사건 초기 미국이 사용한 'regret' 이 한국에서는 '유감' 으로 번역됐다.

유감은 한자로 '遺憾' 과 '有感' 두 종류가 있다. 국립국어연구원이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遺憾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이라는 뜻이다. 有感은 '느끼는 바가 있음'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말이다.

한자를 적시하지 않았다면 대체로 遺憾으로 번역한 것일 게다. 중국도 '이한(遺憾)' 이라고 번역했다.

이 유감(遺憾)은 대개 상대방의 잘못이나 실수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 섭섭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전에 들어 있는 "유감이지만 나무라지는 않았다" 같은 사용례가 그것이다.

반면 영어의 'regret' 은 상대방의 책임을 추궁하기보다 자신의 미진(未盡)이나 실수를 후회스럽게 생각하는 뜻이 많다. "I regret I didn' t study harder.(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아 후회스럽다)" 는 표현에서 보면 쉽게 이해된다.

'regret' 이 섭섭한 일을 저지른 주체를 가리지 않고 그저 일이 벌어진 결과에 대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체로 상대방에 대한 섭섭함을 담고 있는 한국어의 유감(遺憾)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고 하겠다.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의 김광해(金光海)교수는 "유감이라고 할 때 有感보다는 遺憾의 뜻일텐데 그렇다면 'regret' 의 정확한 번역은 아닐 것이란 느낌을 평소에 갖고 있었다" 고 답했다.

그는 "관행적 외교용어로 'regret' 을 그저 유감으로 번역하는 것일는지는 모르지만 일반인은 혼동을 느낄 것" 이라고 진단했다.

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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