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1억 장학금 내놓은 이계홍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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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저 세상에 있는 딸이 기쁘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그토록 제자들을 아꼈는데…. "

70대 할머니가 이승을 떠난 딸의 제자 사랑을 대신해 억대의 장학금을 내놓았다. 제주도에 사는 이계홍(李桂洪.76.북제주군 한경면 고산1리)할머니가 주인공.

李할머니는 지난 12일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상고에 장학금 1억원을 기탁했다. 할머니가 30여년 동안 농사일을 하며 억척스레 모은 재산이다. 李할머니는 1972년 고산상고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던 큰 딸 이미순(李美順)씨를 떠나 보냈다.

가정 과목을 맡았던 미순씨는 교편을 잡은 지 일년도 채 안돼 지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났다. 1남2녀 중 큰딸로 당시 27세였다.

딸을 잃은 충격으로 3년 동안 앓아 누웠던 李할머니는 딸이 재직 중 받았던 월급을 종잣돈 삼아 저축을 하기 시작했다.

"1억원이 모이면 딸이 못다한 제자 사랑을 실천해 딸의 한을 풀겠다" 는 생각에서였다.

李할머니는 "딸은 부산에서 다니던 세무서까지 포기하고 교편을 잡았다" 며 "결혼도 마다한 채 아이들을 가르치는 재미를 밤새워 얘기하던 딸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고 말했다.

감자.양파 농사를 지으며 돈을 모았으나 지난 99년 교통사고로 농사일 하기가 힘들어져 목표액을 채우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29년 만에 어렵사리 목표액을 채우게 되자 그 돈을 몽땅 내놓은 것이다. 이와 별도로 지난해 3월부터는 고산상고 학생 3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李할머니는 "딸의 제사상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 외에 내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며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고산상고는 李할머니가 맡긴 1억원으로 '이미순장학회' 를 설립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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