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경없는 기자회'의 세무조사 항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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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 언론자유 감시기구인 '국경없는 기자회(RSF)' 가 한국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항의하는 서한을 그제 김한길 문화관광부장관 앞으로 보냈다.

서한에서 RSF는 "내년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세무조사가 '정보 다원주의' 에 대한 진정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고 경고하고 "언론에 대한 어떤 압력에도 반대한다" 고 밝혔다.

서한은 특히 이번 세무조사가 정부에 비판적인 일부 언론사에 집중돼 있는 점에 주목하면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선언한 '언론개혁' 의 전조에 우려를 갖게 한다" 고 덧붙이고 있다.

RSF는 직접 취재활동에 종사하는 일선기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결성된 국제기구다. 언론탄압으로부터 기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이 단체의 가장 큰 목적이다. 이 점에서 RSF는 언론사 사주나 발행인.편집인 등 경영진이 회원으로 있는 세계신문협회(WAN)나 국제언론인협회(IPI)와 성격이 다르다.

정부는 WAN이나 IPI가 아닌 RSF가 한국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나선 점에 유의해야 한다.

정부는 특정한 의도가 없는 통상적인 세무조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외국의 언론 경영자가 아닌 일선기자들이 보기에도 한국 정부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 아닌가.

세무조사라는 형식상 적법한 수단을 통해 언론이 정부의 입맛에 맞는 한 가지 목소리만 내도록 유도함으로써 언론의 다원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거듭 밝히지만 우리는 언론사라고 세무조사에서 예외일 수 없으며 법에 따라 세금을 내고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RSF가 항의서한에서 지적했듯 일시에 4백명의 조사요원을 투입해 몇 달씩 장부를 뒤지는 사태는 누가 보더라도 통상적 세무조사는 아니다.

흔히 말하는 '언론개혁' 이 그 목적이라면 그것은 자율적 개혁이어야지 결코 타율적 개혁이어서는 안된다. 국제사회가 우리의 언론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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