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구시대적' 구청예산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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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대전 유성구에서는 예산 집행 문제를 놓고 지역 국회의원과 구청장이 첨예한 갈등을 빚어 주민들의 원성이 크다.

유성구청은 최근 대전시로부터 느닷없이 특별교부금을 신청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지역 출신인 송석찬(宋錫贊)의원(자민련.전 유성구청장)이 자신의 지역구인 전민동에 주차장을 건설하기 위해 행정자치부로부터 특별교부금(국비) 10억원을 따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병령 구청장은 교부세 신청을 거부했다.

총 22억원의 예산이 필요해 지방비 사용이 불가피한 전민동 주차장 건설 문제를 자신과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지방비 사용을 강요하는 것은 '월권' 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구청측은 온천이 밀집해있고 경륜장을 건설중인 봉명동에 주차장을 건설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그러자 宋의원측은 "지역민들의 시급한 현안사업을 위해 국회의원이 따 온 특별교부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는 내용의 비난 유인물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배포했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를 챙기는 것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국회의원도 수완을 발휘해 지역사업을 위한 중앙정부의 특별예산을 따낼 수 있고, 그런 능력이 평가의 잣대가 되었던 시절도 있다. 하지만 민선자치 시대는 다르다.

유성구 사태는 국회의원의 시대착오적 의식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느낌이 든다. 지방예산이 추가로 필요한 사업을 예산권자인 구청장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자치단체 업무에 혼란을 주게 된다.

구청측 주장대로 사업 우선순위가 흐트러져 순위에서 밀려난 주민들은 피해를 보게된다. 국회의원의 이같은 행동은 자신의 표만 의식한 행동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국회의원이 확보한 특별예산을 유용하게 활용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거부한 구청장의 태도도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성구의 예산 갈등이 밀실에서 진행되지 않고 공개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자치행정을 더욱 투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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