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독재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며칠 전 체포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대통령은 독재자의 전형이다. 20세기 최악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와 여러모로 닮은 점이 있는 그는 독재자가 갖춰야 할 자질을 골고루 갖췄다. 히틀러와 밀로셰비치를 통해 일반적인 독재자 상(像)을 유추해 보는 것도 흥미있다.

독재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세의 흐름에 저항한다. 밀로셰비치는 "살아선 안나간다" 며 무장저항까지 벌였다.

히틀러도 소련군이 베를린을 완전 점령하기 불과 이틀 전에야 자살했다. 우리나라에도 골목길에서 측근들을 대동한 채 마지막 악을 쓰다 체포된 전직 대통령이 있다. 모두가 '수레를 막아선 사마귀' (당랑거철.螳螂拒轍)격이었다.

독재자들이 이처럼 고집이 세거나 과대망상증을 보이는 등 이상 성격 소유자인 것은 불우했던 과거와 관련이 있다.

히틀러는 조실부모한데다 미술학교에 두차례 떨어지는 등 성장기가 불우했다. 밀로셰비치도 부모가 모두 자살을 한 어두운 과거가 있다.

이 때문에 독재자들은 권력을 잡은 뒤에도 결코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항상 심각하고 근엄한 표정이다. 때때로 화를 내는 얼굴엔 늘 어두운 그늘이 있다. 히틀러와 밀로셰비치가 웃는 사진을 본 기억이 없다.

독재자들은 대중을 선동하는 재주가 있다. 이를 위해 사회 내부의 편가르기를 하고 특정집단을 민족의 적으로 몰아간다. 보통 이 과정에서 독재자들은 큰 죄를 저지른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밀로셰비치는 비(非)세르비아인을 희생양으로 택했다. 그 결과는 극악무도한 유대인 학살과 인종청소였다.

독재자들은 특히 비판을 싫어한다. 이 때문에 독재자가 칼자루를 쥔 다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일이다. 나치의 언론탄압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밀로셰비치도 비판적인 신문발행인들을 소추해 거액의 추징금을 물렸고, 악명 높은 정보법으로 반정부 언론사들의 문을 닫게 했다. 이로 인해 그는 지난해 유네스코 산하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의해 '언론 10적' 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같은 특성을 가진 통치자를 독재자로 보면 대충 맞다.

이런 독재자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이다. 자살한 히틀러는 그나마 양반에 속한다. 최근의 독재자로는 1989년 12월 총탄 세례를 받고 처형된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가장 비참한 경우였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