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농군이 무궁화 '홀로 농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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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오덕리 광활한 동송 벌판 한가운데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의 커다란 유리 온실이 있다.

넓이는 7천9백여평.웬만한 논의 규모보다 큰 이 온실 주인은 여성이다.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다.이슬농원 대표 정영숙(39 ·鄭英淑)씨.

말은 대표지만 鄭씨는 이 온실 한 귀퉁이에서 잠자고 먹는 생활을 4년째 계속하고 있다.온실 안이라 습기가 높고 먼지도 많아 지내기가 불편하지만 자신의 분신과 같은 꽃을 돌보느라 온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鄭씨가 기르는 꽃은 일명 하와이 무궁화인 미니 무궁화.2002년 월드컵 특수를 기대하고 선택해 지난해부터 기르기 시작했다.현재 화분 10만본과 모종 20만본을 키우고 있고 3백만본까지 늘여 올 가을부터 출하할 계획이다.

鄭씨는 미니 무궁화가 수입종이기는 하지만 꽃 모양이 기존 무궁화와 같고 노랑,빨강,진분홍,연분홍,오렌지 등 다양한 색깔에 크기도 30㎝ 정도여서 도로변 화단 장식과 일반 가정에서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鄭씨는 86년 대학(동아대 관광과)을 졸업한 뒤 여행사 원자력발전소 새마을금고 등 10여 곳의 직장을 옮겨 다녔다.직장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鄭씨는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했다.꽃에 대한 관심이 컸던 그녀는 91년 부산 아람마트에 꽃을 공급하는 중간 상인으로 나섰다.남다른 안목과 감각으로 꽃을 선별해 공급하면서 거래처가 28개 마트로 늘었다.매일 서울의 꽃시장을 왕복했다.

돈은 어느정도 벌었지만 힘이 너무 들어 94년 이 일을 중단했다.남의 꽃을 파는 대신 아예 꽃을 기르기로 했다.

경기도 포천에 사는 언니의 알선으로 9백여평의 땅을 빌어 95년 칼랑코에와 허브를 심었다.중간 상인을 하면서 안면을 익혔던 화훼 재배 농민들로부터 재배법을 배웠다.

자신의 농원을 물색하던 鄭씨는 97년 부도 처리돼 방치된 철원의 유리온실을 찾아냈다.채권단을 통해 임대했다.

전국에서 가장 추운 지역에서 비싼 난방비를 들여 꽃 농사를 짓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변의 만류가 심했다.

鄭씨는 1천6백여평에 꽃과 고추를 심었다.고추값 폭락으로 실패를 맛봤다.꽃 이외의 농작물 유통에는 안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궁화를 잘 자라고 있다.鄭씨는 성공을 확신하고 있다.지난 2월에는 경매를 통해 유리온실을 아예 사들였다.

꽃 농사는 3천여평에만 하고 온실 주변 2천여평에 노인과 어린이들을 위한 공원을 만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5년 정도면 이같은 일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鄭씨는 "열심히 일했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며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원=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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