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문정희 '남자를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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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소 자신 속에서 으르렁거리던 짐승과

결별한다.

딸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신이 나오는 길을 알게 된다.

아기가 나오는 곳이

바로 신이 나오는 곳임을 깨닫고

문득 부끄러워 얼굴 붉힌다.

딸에게 뽀뽀를 하며

자신의 수염이 때로 독가시였음도 안다.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소 자신 속에 으르렁거리던 짐승과

화해한다.

아름다운 어른이 된다.

- 문정희(1947~)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이기는 하지만 아버지로서의 남자는 단순한 남자 즉 성구분(性區分)으로서의 남자와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여자에 대한 남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물들의 세계에서 보듯 종족 번식을 위해서 맹목적 리비도의 충동에 사로 잡혀 있는 수컷으로서의 남자. 그러므로 아직 딸을 갖기 이전의 남자는 일반적으로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기가 쉽다.

그러나 딸을 갖게 되면 이 세상의 여자가 항상 성적 대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남자는 동물적 욕망의 세계를 벗어나 존재의 성숙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오세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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