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좋다] '영화세트집' 같은 포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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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회(支會)란 중앙에 대한 지점의 개념인가요? 아니면 각 지역이 동등한 자격을 갖는 지역학회의 개념인가요?”

나의 이런 질문에 학회장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그리고 “후자로 해석해 달라”고 대답했다.나의 질문은 이어졌다.

“그럼 서울지회도 있나요?”순간 좌중은 조용해졌다.

몇년전 포항공대 교수로 귀국하여 어느 학회에 참석했다가 영남지회 창설문제를 토의했을 때 일이었다.

한국에 상존하고 있는 중앙 대 지방의 개념.중앙은 서울이고 다른 지역은 지방이라는 우열의 개념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절대적 장애가 되고 있다.그래서 한국에서는 정부기관,기업의 본사,크고 유명한 대학 등이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랜 외국생활을 하고 귀국해서 당황한 기억중의 하나가 TV의 교통정보와 기상예보였다.전국의 시청자가 보는 아침 뉴스시간에 “지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라든가 한강대교를 보여주며 교통상황을 장시간 설명하는 것은 비가 내리지 않고 한강대교와 상관없는 포항에서 TV를 시청하는 나를 당황케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그 단어자체가 문제가 아니라,한국에서 그 단어가 열등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각 지역 학회는 챕터(Chapter)라는 개념에 의해 각 지역이 동등한 자격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미국전역을 여러 개의 챕터로 나누어 지역학회가 활동한다.대학도 작은 도시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사람들도 뉴욕같은 대도시보다 종소도시의 삶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한 학부형이 “포항공대가 서울에 만들어졌으면 더 좋았을 걸…”하는 말을 듣고 포항공대의 진정한 가치는 포항 같은 중소도시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중소도시의 상대적으로 조용한 삶의 환경이 학생들의 학업과 교수들의 연구에 훨씬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더이상 서울과 지방으로 나뉘어져야 할 필요가 없는 나라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차를 몰고가면 거의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 국토에 걸쳐 사람들이 퍼져 살고 있다.

그만큼 좁은 나라다.따라서 지방이 좋다란 개념보다는 “각 지역이 좋다”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각 지역의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살면된다.각 지역별로 지역적 특성을 강조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삶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포항의 삶은 만족스럽다.포항은 어떤 외국인이 말했듯이 ‘영화세트장’같다.

정취가 있는 바다가 있고 산과 들, 형산강의 낭만이 있다.포항제철 같은 산업이 있고 또 포항공대 같은 교육과 연구의 장소가 있다.

타지역과의 교류는 잘 발달된 교통망과 인터넷 ·휴대폰 등의 통신수단의 발전으로 이미 지역의 구분자체를 의미없게 만들고 있다.

이런 장소에서 공부하는 포항공대생들과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그들의 삶과 미래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서의호 교수(포항공대 산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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