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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500'과 줄기세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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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요즘 국내 제약업계의 화제 중 하나가 '비타500'의 도약이다. 2001년 출시된 비타500은 불과 3년 만에 매출 1000억원을 넘볼 정도로 급성장했다. 지금까지 무려 5억병이나 팔렸다고 한다. 비타500을 생산하는 제약회사는 한때 부도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비타500의 대히트로 탄탄대로에 올라섰다.'카페인이 없는 마시는 비타민제'란 아이디어와 유명 가수를 내세운 광고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비타500의 성공은 우리 제약산업의 초라한 자화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제약회사가 의약품이란 본연의 제품 개발보다 영양제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의 매출액 1위 제품이 수십년째 아직도 드링크류인 박카스인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바깥을 내다보면 사정은 확연히 달라진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해 시가총액 기준으로 미국의 제약회사 화이자가 2490억달러로 4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기간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는 750억달러로 45위에 불과했다. 화이자가 개발한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는 지난해 무려 103억달러(약 12조3600억원)어치나 팔렸다.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선 15년간 1조원에 가까운 비용이 들어간다. 영세한 국내 제약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비용이다. 이처럼 높은 진입장벽 뒤엔 미 식품의약국(FDA)이 숨어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치장한 채 후발 국가들에 까다로운 허가 조건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 약값의 3분의 1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손으로 넘어간다. 제약 식민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반전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미 FDA를 필두로 한 미국 등 선진국이'특허'와 '심사'란 양날의 칼자루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줄기세포 연구 허용을 둘러싼 논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황우석 교수처럼 뛰어난 과학자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생명윤리를 둘러싼 문제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것이다. 자비를 들여 유엔본부를 찾아 줄기세포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는 황 교수의 소식은 차라리 처절하기까지 하다.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필요한 배아(胚芽)란 무엇인가. 수정 14일 이내의 구체적 장기를 형성하기 직전의 세포 덩어리다. 그러나 지금도 생명윤리를 외쳐대는 이 땅에선 해마다 수십만명의 태아가 낙태 시술로 희생되고 있다.

여기서 잠깐 비용과 편익을 따져보자. 배아보다 생명체에 훨씬 가까운 태아를 죽이면서 얻는 결과는 고작 아기를 갖지 않겠다는 이기심의 충족뿐이다. 반면 줄기세포 연구는 세포 덩어리를 희생해 새로운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죽어가는 난치병 환자를 위해 생명체로 보기 힘든 배아를, 그것도 엄격한 제한 아래서 연구하는 것에 대해 누가 돌팔매질을 할 것인가.

1978년 영국에서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을 때 많은 사람이 생명윤리를 들어 반대했다. 그러나 오늘날 누구도 시험관 아기 시술에 반대하지 않는다.

줄기세포로 상징되는 생명공학(BT)혁명은 최근 수십년 동안 경험했던 정보기술(IT)혁명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 있다. 인터넷이 빵을 만드는 것도, 암을 치료하는 것도 아닌 반면 BT는 콘텐트 자체를 바꿔 놓기 때문이다. 쇠락 일로를 걷고 있는 제약산업에 이어 줄기세포 연구까지 선진국 수중에 넘어가는 일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줄기세포 연구의 전면적인 허용 등 국가적 지원과 육성을 부르짖고 싶은 심정이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