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개운찮은 후원회장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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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인제(李仁濟.민주당)최고위원의 후원회장을 하는 게 '정치를 한다' 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 회장직을 사퇴한다. "

경북대 박찬석(朴贊石)총장이 16일 이 대학 홈페이지 게시판에 띄운 글이다. 이달 초 "이인제위원의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있었다. 李위원이 젊고 비전이 있다고 생각해 수락했다" 고 말했던 朴총장이다.

李위원측도 당시 "차기 대선 때 TK(대구.경북)민심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 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다음달 3일 朴총장을 앞세운 대규모 후원회 일정도 잡아놓았다.

하지만 朴총장의 행보는 '학계의 과도한 정치참여' 논란을 낳았다. 경북대 교수회는 "대학은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권과의 공조는 순수성이 입증된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된다" 고 비판했다.

인터넷에서 학생들은 "국립대 총장의 정치참여를 막는 규정은 없다" , "정치판의 곁불만 쬐는 자리에서 총장자리로 돌아오시라" 며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이런 논란에 대해 학계 인사를 후원회장으로 영입해 놓은 의원들 대부분은 당혹해 한다. 민주당 한화갑 최고위원은 김용운(金容雲)전 한양대교수, 김근태 최고위원은 변형윤(邊衡尹)전 서울대교수를 후원회장으로 모셨다. 이수성(李壽成)전 총리는 서울대총장 시절 한나라당 손학규 의원 등 여야 의원 10여명의 후원회장을 동시에 맡았다.

정치인들이 학계의 유명인사들을 후원회 간판으로 내세우려는 것은 흔한 이미지 관리전략이다. 사회적 명망가를 잘 끌어들이는 정치인들은 '교류폭이 넓다' 는 평판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박찬석 총장' 의 경우는 과거와 차이가 난다. 서울대 박찬욱(朴贊郁.정치학)교수는 "朴총장을 둘러싼 논란은 정책보다 인물.지역을 앞세운 미묘한 정치 구도가 빚어낸 측면이 많다" 고 진단했다.

이번 논란은 학계와 정치권의 교류는 어느 수준이 적정한지, 후원회 제도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숙명여대 박재창(朴載昌)교수는 정치 이슈를 중심으로 각계가 참여하는 정치활동위원회(PAC)가 후원회 역할을 하는 미국의 방식을 제시했다. "사람보다 정책을 우선하는 쪽으로 후원회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는 게 朴교수의 지적이다.

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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