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보기] 프로스포츠 '구조조정 1호' 멍에 벗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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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플레이오프를 벌이고 있는 프로농구 SBS선수들은 갑자기 많아진 관중 때문에 고민이라고 한다. 정규시즌 동안에는 6천5백석 규모의 체육관이 3분의1도 차지 않아 조용한(□)가운데 게임을 했다. 그런데 플레이오프 1차전에 4천9백50명의 관중이 몰려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고 한다.

관중이 늘어 신경이 쓰인다는 선수들의 고백은 한국 프로스포츠의 현주소를 말해 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프로구단들이 얼마나 관중없이 경기를 해왔는지, 관중 유치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인기 회복에 얼마나 등한히 했는지 알 만하다.

사정은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도 마찬가지다.

프로야구는 지난해 경기당 평균 4천7백13명이 입장, 사상 최악의 흥행을 기록했다. 1995년 1만7백27명의 최고 관중수에 비해 5천3백여명이 줄었다. 관중이 적으니 선수들이 신이 날리가 없다. 자연히 온 몸을 던지는 파인플레이나 박진감 넘치는 승부가 줄게 되고 맥빠지는 경기가 많아진다.

프로야구가 동네야구를 닮아가니 돈들여 구경갈 사람이 없는 것이다. 결국 프로야구 각 구단은 60억~1백3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오는 18일 수퍼컵을 시작으로 시즌을 여는 프로축구도 걱정이 태산이다. 올해는 월드컵 준비 때문에 챔피언시리즈를 생략하고 리그 성적만으로 우승을 결정하기로 해 박진감이 떨어진다. 게다가 5월 말 열리는 컨페더레이션컵 대회에 출전한 외국 대표팀들의 화려한 경기에 한껏 눈이 높아진 축구팬들이 6월에 시작될 프로축구 정기리그에 많은 성원을 보내 줄 지 걱정이다.

이웃 일본이 축구복표사업 시작과 월드컵을 계기로 초창기 J리그의 인기를 되찾겠다며 들떠 있는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지난해 프로축구는 경기당 9천8백49명의 관중이 입장, 99년 1만3천8백45명에 비해 무려 4천명이 줄었다. 구단별로 평균 5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프로농구가 가장 적자폭이 적다. 관중 동원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축구나 농구에 비해 선수 수가 적어 인건비가 덜 들기 때문이다. 올해 경기당 평균 3천3백78명의 관중이 입장, 20여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대기업들이 엄청난 손실을 무릅쓰고 프로구단을 계속 끌고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LG농구단 김인양 단장은 "기업의 이미지 제고, 그리고 내부 단결 도모" 라고 말한다. 말대로라면 프로스포츠는 아직도 수익을 내야 존재하는 기업이 아니라 대기업의 도움으로 지탱되는 세미프로, 즉 지난날의 아마추어 스포츠 형태에서 한발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모기업이 어려움에 빠지게 되면 스포츠단은 일착으로 정리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지난 13일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현대농구단이 단적인 예다.

각 구단은 존속뿐 아니라 프로스포츠의 정착을 위해 관중 동원에 힘써야 한다. 지금 추세라면 언제 프로스포츠가 통째로 퇴출될 지 알 수 없다.

권오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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