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성난 외환은행 소액주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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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대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13일 주총에서 소액주주의 항의로 홍역을 치렀다.

소액 주주들은 오전 10시 주총이 열리는 외환은행 본점 강당에 도착했지만 양복 차림의 '직원 주주' 들이 3백여석의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뒤편에 서서 총회를 지켜보아야 했다. 발언권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자 불만이 고함과 욕설로 변했다.

"당신들 믿고 투자했다가 우리는 호주머니를 몽땅 털렸다" . 소액 주주들은 지난해 12월 10일의 50% 감자(減資)조치에 불만을 터뜨렸다. 한 주주는 "지난해 주총에서 부실을 털어내 이제 이익을 낼 수 있다고 장담하더니 감자가 그 결과인가" 라고 따졌다.

박영철 이사회 의장이 "어려운 경제 여건 탓이다. 대주주인 정부도 큰 손해를 보았다" 며 양해를 구했다. "우리가 언제 부실기업에 돈을 꿔주라고 했느냐" , "우리는 빈털터리인데 책임자들은 사표 한장 내놓으면 다냐" 는 소액주주의 외침이 이어졌다.

외환은행은 정부 지분이 43.2%다. 그러나 정부가 대주주라는 점에 소액주주들은 안심하기 보다 더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현대 문제에 발목이 잡힌데다 대주주인 정부의 입김으로 언제 또 원하지 않는 지원을 했다가 떼일 지 모른다는 눈치였다. "주가가 오르면 감자에 따른 손실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 는 은행의 설득에 귀를 기울이는 주주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날 외환은행의 주가는 9% 이상 떨어진 2천5백55원에 마감됐다. 은행주 가운데 가장 크게 하락했다. 올들어 현대에 대한 지원방안이 발표될 때마다 외환은행의 주가는 직격탄을 맞아왔다.

정부는 최근 '금융기관' 이 아닌 '금융회사' 라고 강조했다. 은행들도 외환위기 이후 주주를 중시하고 이익을 최우선하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다. 그러나 현대 살리기에 총대를 멘 외환은행이 내년 주총에선 떳떳하게 경영실적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한 소액주주는 "현대에 또 자금을 지원한다는데 아무래도 그 돈을 못받을 것 같다. 경영진이 스스로 그런 결정을 내렸느냐" 며 임원석을 향해 외쳤다. 아무리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이라도 이제는 정부 입장과 함께 소액주주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여야 한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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