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다지자] 59. 노사불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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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 7월 한 주식회사의 노사분규 현장에 나가 교섭을 위한 사적조정(노동법상의 노동분쟁 해결 절차)을 할 때의 일이다.

회사 임원들을 만나 보니 처음부터 노조를 믿지 않고 있었다. 한 임원은 "노조의 요구조건을 일부 들어주더라도 언젠가는 파업을 하지 않겠느냐" 며 "이번에 물러서면 회사의 경영을 건건이 어렵게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조의 요구는 절대로 들어줄 수 없고, 노조가 파업하면 무조건 폐업이나 파산신청을 하겠다" 며 대화를 완강히 거부했다. 또한 "노동조합을 해체하고 노사협의회로 전환하면 조정에 임하겠다" 고 말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놓기는 노조 집행부도 마찬가지였다.

노조의 교섭안에는 '구조조정을 하려면 회사가 노조와 합의하고 다수의 유급 전임자를 인정해야 한다' 는 등 회사측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많았다. 노조는 이 교섭안을 제시하며 "그 중 한개의 요구조건도 양보할 수 없다" 고 맞섰다.

한 노조간부는 "노조는 교섭안을 제시하기 전에 협상 결렬을 기정 사실화하고 파업준비까지 마쳤다" 고 털어놓았다. 또다른 이는 "회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단체협약이라도 우선 유리하게 체결하자는 게 기본전략" 이라고 말했다.

노사간 입장 차이가 워낙 커 누가 보더라도 합의에 이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회사가 노동조합을 부정하고, 노조가 회사를 불신한다면 어떤 종류의 협상도 있을 수 없다. 노사분규 현장에 가 보면 어떤 쪽의 주장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상호 불신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낀다.

이런 풍토에선 대화와 타협을 가로막는 강경파들만 득세하게 마련이다. 불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뻔하다. 최소한 노사가 서로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노사관계의 기초다.

배인연 <동화노무법인 대표.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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