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출신 조윤옥 할머니 대구시립납골당 안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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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달 6일 중국 훈춘에서 폐암으로 숨진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조윤옥(76)할머니.

할머니는 9일 그토록 그리던 고향 땅 대구에 한줌 유골이 되어 돌아왔다.

중국과 김포공항을 거쳐 이날 오후 3시30분 대구공항에 도착한 조할머니의 유골과 영정은 곧바로 운구차로 칠곡 대구시립납골당으로 옮겨졌다. 숙연한 분위기에서 조사 ·조시가 낭독되고 관계자들의 헌화 등 간단한 장례식이 열린 뒤 유골은 납골당에 안치됐다.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대구 시민모임’(대표 곽동협) 등이 시민사회 단체장으로 치른 장례식에 일반인들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조카와 올케 등 유족 3명과 시민모임 관계자 등 30여명이 함께 했을 뿐이다.

‘경북 대구부 대명동2구 신지회 18의 60’에서 태어난 조할머니의 일생은 기구하기 이를 데 없다.5∼6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먹고살기 힘들어 여덟살때 함경남도 북청으로 양딸로 팔려갔다.

이후 어머니를 한번도 보지 못했고 양어머니의 심한 매질을 당한 후유증으로 평생 간질병을 앓아야 했다.

조할머니가 위안소로 팔려간 것은 15살 되던 어느 날.청진위안소에서 1년간 일본군의 성노예로 시달렸고 다시 만주의 훈춘으로 옮겼다.계속적인 위안소 생활로 건강했던 몸이 시들어가던 19살 할머니에게 해방이 찾아왔지만 꿈에 그리던 고향을 밟지는 못했다.

그는 청진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으나 38선이 가로놓여 “대구에 갈 수 없다”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이후 중국에서 “어디서 왔느냐”는 말에 “청진에서 왔다”는 대답 한마디로 할머니의 국적은 북한이 되어 버렸다.

조할머니는 위안소에서 임신과 성병을 막기 위해 일본군이 쬐게 했다는 수은 증기 때문에 36세때 결혼하고도 임신하지 못했다.그는 남편이 결혼 이듬해 숨져 파출부 등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다.

조할머니는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지난해말 국적이 중국으로 바뀌었으며 “죽기 전 고향땅을 밟아 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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