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교육·친구, 엄마 인맥이 좌우하는 시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56호 22면

엄마들의 인맥은 자녀들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아이들 교육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죠. 어디 학원이 좋은지, 학년마다 어떤 걸 대비하면 좋은지…. 학년이 바뀌면 학부모총회가 열리는데, 이런 걸 계기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는 모임이 생겨요. 직장인 엄마들은 임원을 맡은 엄마를 따로 만나서 인맥을 만들기도 하고요. 학년이 쌓이다 보면 이런 모임도 쌓이죠. 고학년부터는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알아서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지만, 저학년 때는 친한 엄마들끼리 체험학습 같은 걸 같이 다니면서 아이들도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서로 집에 초대도 하고 그러다 보면 엄마들도 직장 다니는 아빠들만큼 바빠요.”

인맥관리 전선에 나서는 주부들

초등생 자녀 둘을 둔 주부 장현덕(39)씨의 말이다. 인맥관리가 직장인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지났다. 주부, 특히 자녀를 둔 학부형들끼리 인맥을 만들고 관리하는 데 들이는 공은 여느 직장인 못지않다. 교육제도·입시제도가 복잡다단하게 계속 바뀌는 데다 사교육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이 한 원인이다. 자녀가 고교생인 주부 정현주(43)씨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엄마들이) 서로 언니·동생하며 친해진 사이가 아니면 정보를 잘 안 준다”며 “뒤늦게 과외그룹에 넣어달라고 하면 자리가 없다고 거절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자연히 인맥을 만드는 시기도 빨라지는 추세다. 주부 원영미(44)씨는 “초등학교 이전에 유치원부터 그룹이 형성된다”면서 “영어유치원처럼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교육관이 비슷한 엄마들의 모임이 결속력이 강하다”고 말했다.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데는 지역에 따라 매달 100만~200만원까지도 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교생·중학생 자녀를 둔 주부 이모(41)씨는 “요즘 젊은 엄마들은 강남의 산후조리원부터 모임을 한다는 말도 들었다”고 전했다. 신생아 때 인맥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얘기다.

이씨는 이런 모임을 통해 형성하는 인맥을 ‘인프라’로 표현했다. “사는 정도, 부모의 교육 수준 등 비슷한 사람들과 인프라를 맺으려는 거죠. 옛날에는 학교만 보내놓으면 알아서 친구하는 걸로 알았는데, 지금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녀의 교우 관계를) 맺어주려고들 해요. 직장 다니는 엄마들도 다른 엄마들한테 밥을 사면서라도 모임에 끼려고 하죠. 1학년 때 다들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야지, 중간에 들어오면 아웃사이더가 되기 쉽거든요. 사교육이 너무 많아서 그렇기도 해요. 엄마가 인프라가 없으면 아이가 힘들어요. 엄마들 나름의 사회생활이에요.” 이씨는 “큰애 때는 나도 다른 아이들 생일잔치까지 기를 쓰고 가서 엄마들을 만나려고 했다”면서 “둘째 때는 큰애 때 경험도 있고 노하우가 생겨서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는 판단이 생겼다”고 말했다.

달리 말하면 한 자녀 가정이 늘어난 것도 인맥 관리를 절실하게 느끼는 주부가 많아진 이유다. 3년 전 직장을 그만둔 주부 김모(41)씨는 “아이가 대개 하나씩밖에 없어 아이들이 노는 데도 엄마가 잘해야 하더라”고 전했다. 요즘 아이들은 취학 전이라도 예체능 등 갖은 활동으로 바쁘다. 엄마들끼리 미리 약속을 해야 놀이터든 어디든 아이들이 만나서 함께 놀게 된다는 얘기다. 김씨는 “이런 동네모임에다, 자연스러운 학교모임, 그리고 스포츠센터 같은 데서도 아이들 기다리면서 엄마들이 말을 섞고 모임을 만들게 돼 3개 정도의 모임은 기본”이라며 “모임에서 적잖은 비용이 드는 별도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경우도 있어 이런 것까지 같이 하려면 경제적 능력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주부들의 인맥은 스트레스를 푸는 장으로도 활용된다. 두 자녀를 둔 김경아(46)씨는 “사촌보다 이웃사촌이 좋다고들 하지 않느냐”면서 “마음 맞는 엄마들끼리 만나면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요즘은 대가족도 예전처럼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이 중심이고, 아이들은 예전보다 자아가 일찍 발달한다”면서 “교육방법, 예를 들어 아이들을 야단치는 방식도 다른 엄마들의 경험을 보고 듣는 게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주부들은 인맥으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지만, 얻기도 한다. 특히 자녀의 성적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친한 주부들 사이에도 민감한 문제가 된다. 앞서 인용한 주부 이모씨는 “엄마들은 서로 협력자이자 경쟁자”라면서 “아예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거나 아이들의 진로가 달라지면 엄마들끼리 더 편하게 친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입시경쟁을 하는 게 자녀들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원영미씨는 “어느 학원 어느 반을 다니느냐고 묻거나 지금 다니는 학원 교재를 보여달라는 것도 실례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학원마다 레벨 테스트를 해서 수강생을 받거나 반편성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대놓고 실력을 묻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