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성 밝은 것도 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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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호 10면

나는 요즘 커피와 도넛을 파는 가게에서 주로 아침을 해결한다. ‘달콤한 도넛은 아침의 허기와 우울을 달래주고, 쓴 커피는 아직 잠이 덜 깬 뇌세포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은 이 글을 쓰면서 떠올린 것이고 사실은 그 가게의 유리창이 크기 때문이다. 그 가게는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창가에 앉으면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노인네처럼 사람 구경하는 것을 좋아해 종일 대문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하염없이 구경하곤 했다. 그러니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와 도넛을 먹으며 오가는 사람 구경하는 게 요즘 내 아침의 큰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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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어딘지 부족하다. 그건 이야기 하나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그 가게에서 아침을 해결하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커피와 도넛을 파는 가게의 창가 자리에 앉아 내가 매일 아침을 해결하는 시간 바로 맞은편 자리에는 나처럼 아침을 해결하는 한 여자가 있었다. 매일 아침 내가 그 여자를 보기 위해 그곳에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나는 매일 아침 거기에 가고 그 여자도 그곳에 온다. 그리고 나와 그 여자는 항상 맞은편 자리에 앉아 아침을 해결한다.나는 인사성이 밝다. 학교 다닐 때도 다른 칭찬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인사 하나는 참 잘한다’는 칭찬은 들은 적이 있을 정도다. 어쩌면 나의 경쟁력은 밝은 인사성인지 모른다. 나는 인사부터 하고 본다. 사람들은 알듯 모를 듯하면 인사를 안 하겠지만 나는 인사한다. 나는 사람이고 인사는 사람의 일이니까.

나는 눈만 마주치면 인사한다. 회사 경비실 아저씨와 청소하는 아주머니와도 인사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나는 인사를 나누고 싶다. 지나가는 여자라도 두 번만 마주치면 인사하고 싶어 안달이다. 점심 시간 식당에 가는 동안에도 나는 수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눈다.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처럼 말이다.

매일 아침 마주치니까 나는 이제 그 여자를 기억하고 의식하게 된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 맞은편 자리에 앉아 핫잉글리시 머핀 세트를 먹으며 영어공부를 하는 여자. 나는 그 여자를 ‘아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아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인사를 안 하니 어색하고 불편하고 일종의 죄의식까지 든다. 그래도 인사할 수는 없다. 인사를 하면 안 된다.

그 정도의 눈치와 양식은 나도 갖고 있다. 느닷없이 중년의 아저씨가 인사를 건넨다면 그 여자는 얼마나 놀랄 것인가. 여자는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여자는 충격에 빠져 실어증에 걸릴 수도 있고 어쩌면 기억상실증에 걸릴 수도 있다. 너무 극단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여자는 충격으로 자살을 결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사정도 만만치 않다. 나는 인사강박이 있다. 다정만 병이 아니다. 인사도 중병이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하고 싶어 안달이 나는 증상인데 아는 사람에게 인사를 못하고 있으니 불안하고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뛰고 숨이 가빠 마침내 질식할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드디어 나는 인사를 하고 만다.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겠으니.

“안녕하세요?”
당연하지만 그날 이후 여자는 그곳에 오지 않는다. 나는 요즘도 그 가게에서 커피와 도넛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비어 있는 맞은편 자리를 바라보면서.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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