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福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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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호 11면

대보름날, 마을회관에서는 쌀 가득 담긴 됫박에 양초 꽂고, 웃음 머금은 돼지머리를 올린 제상이 차려졌습니다. 돼지 입에 돈 물리고, 소주 한 잔 바치고 ‘무사태평’을 빌었습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이내 무채와 시금치, 나물 반찬에 찰밥과 막걸리가 등장하니 술잔이 바삐 돌아다닙니다. 장구와 꽹과리 장단에 어르신들이 손뼉치며 어깨춤을 덩실거리니 시끌벅적, 질펀한 보름맞이 춤판이 펼쳐집니다. 술잔이 돌고, 어깨가 돌고, 웃음이 돌아 마을회관이 들썩입니다.

불콰한 여세를 몰아 들판으로 내려갔습니다. 무딤이 들판에서는 악양 청년회가 진행하는 달집 태우기 행사가 열렸습니다. 올해는 돼지 15마리나 잡아 먹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한 리필’로 주고, 양은 솥에서 ‘부글부글’ 끓는 떡국은 날개 돋친 듯 날아갔습니다.

다 저녁때에 드디어 달집에 불을 붙이니 폭죽이 터지고 소원성취 ‘복’불이 밝혀졌습니다. 오늘은 복 빌고 실컷 노는 날입니다. 물론 내일은 ‘쌔빠진’ 농사일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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