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방미 전날 이회창총재 NMD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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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http://www.leehc.com)는 5일 "정부가 민감한 외교사안에 대해 불과 사흘 사이에 상반된 입장을 오락가락하며 사상 유례없는 혼선을 보였다" 고 말했다. 총재단 회의에서다.

지난달 28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한.러 정상회담에서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조약을 보존.강화키로 합의발표한 뒤 2일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이 "미국의 입장을 이해한다" 고 말한 것을 두고서다.

한.러 합의는 미 부시 행정부의 역점사업인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에 대한 반대로, 李장관의 발언은 지지로 각각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李총재는 "같은 사안에 대해 러시아엔 이렇게 합의하고 미국엔 다르게 말한 것 아니냐" 며 "국가의 신뢰.체면을 실추시키고 국가이익을 크게 손상했다" 고 지적했다. 경위 조사와 책임자 추궁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고 한다.

李총재의 측근은 "(ABM 합의를 하면)NMD 문제가 돌출되리란 것을 몰랐다면 (정부가)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큰일 날 일" 이라는 게 李총재의 인식이라고 전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들도 "미국과 러시아.중국간에 NMD에 대한 결론이 나오기 전에 한국이 끼어들 문제가 아니며 그때까지는 찬반 입장 표명 없이 '전략적 모호성' 을 유지했어야 했다" 고 지적했다.

李총재의 측근인 윤여준(尹汝雋)의원도 "정부가 'NMD와 ABM은 별개다' 라는 식으로 해명하는데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고 비판했다. 다른 당직자는 "부시와 푸틴 모두에게 신용을 잃을 판" 이라고 꼬집었다.

박근혜(朴槿惠)부총재와 목요상(睦堯相)정책위의장 등 당 소속 통일외교통상위.국방위원들은 별도로 연석회의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국익이 첨예하게 걸려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신중치 못한 발언으로 외교적 문제를 일으킨 것에 대해 강도 높은 질책이 필요하다" 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관련 상임위를 소집해 추궁키로 했다.

李총재측은 이번 사태를 정부의 외교실책을 추궁할 좋은 기회로 여기는 모습이다.

이를 통해 李총재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판단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정애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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