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안방을 잃고서 세계를 어찌 얻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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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3월 4일자 E1면 ‘수출 차에 기본인 안전장치, 내수 차엔 없다?’라는 기사에 대해 독자들은 많은 의견을 보내왔다. ‘설마 했는데,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국내 소비자를 역차별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현대·기아차 측은 “수출 차의 ‘어드밴스드 에어백’은 ‘일반형 에어백’보다 더 위험할 수 있어 내수 차에는 장착하지 않았다”는 궁색한 해명을 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안전장치 규정이 미국만큼 강하지 않아 첨단 장치를 달지 않았다는 해명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있다. 규정이 없더라도 더 안전한 장치가 있다면 장착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한 독자는 e-메일로 “각종 안전장치를 기본으로 단 수출 차가 해외 안전 테스트에서 ‘별 다섯 개’를 받았다는 광고는 이런 장치가 없는 내수 차를 사야 하는 국내 소비자를 현혹하는 과장 광고”라며 “업체 스스로 개선할 생각이 없다면 정부가 나서 안전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 리콜로 곤욕을 치르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세계 1등을 한 데는 내수의 40%를 점유한 ‘안방 지키기’가 밑거름이 됐다. 내수에서 안정적인 이익 기반을 확보한 뒤 해외를 공략해 성공을 거뒀다. 도요타에 1위를 내주기 전까지 80년 동안 세계 1등이었던 미국 GM이 곤경에 처한 것도 안방인 미국에서 소비자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2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 가운데 70% 이상이 내수에서 나왔다. 내수 차의 가격이 비싼 데다, 이익이 많이 나는 고급차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10년 동안 점유율 75%라는 든든한 안방을 기반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했다. 일본 업체보다 한발 앞서 중국·인도를 공략하기도 했다. 지난해 ‘글로벌 톱5’에 들어갔으며 앞으로 세계 시장을 도요타와 폴크스바겐, 현대·기아차가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안방 단속이다. 현대·기아차가 ‘국내에 관련 법규가 없다’는 이유로 수출 차에 못 미치는 안전장치를 내수 차에 장착한다면 소비자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국익을 생각하며 국산 차를 샀던 소비자들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이미 수입차가 늘면서 내수 점유율이 6%에 달했다. 그동안 국산 차의 가격이 많이 올라 일본 차와 가격 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안방을 잃고 세계를 제패한 글로벌 업체는 없다는 게 자동차 100년사의 교훈이다.

김태진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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