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애틀 지진, 사망은 심장마비 할머니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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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시애틀 등 미국 태평양 북서부지역을 강타한 지난달 28일(현지시간)의 지진은 워싱턴주에서는 52년 만에 최악으로 기록됐다.

1949년 4월 13일 리히터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해 8명이 사망한 이후 최대 규모다.

미 북서부지역은 판구조론상 태평양판과 북아메리카판이 만나 충돌하는 경계지역이어서 지진에 취약한 지대다. 94년에도 로스앤젤레스 북부에서 리히터 규모 6.7의 강진이 발생, 72명이 사망하고 4백억달러의 재산피해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시아와 남미 등에서 발생한 지진이 수만명의 인명피해를 가져온 것과 달리 미국에선 내진설계 등을 철저히 해 인명피해는 극히 적었다.

오전 10시54분부터 시작된 지진은 약 45초간 계속됐고 관공서.학교.집.병원 등에 있던 시민.학생들이 놀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시애틀의 한 시민은 "마치 풋볼 경기장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는 "거리가 온통 폭격을 맞은 것 같았다" 고 말했다. 호텔 등 시내 중심가 고층건물들은 건물 벽에 금이 가 놀란 사람들이 승강기나 비상계단을 통해 황급히 대피했다.

시애틀에 본사가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은 이날 웨스틴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새 윈도 운영시스템인 윈도 XP에 관한 연설을 하다 지진이 나는 바람에 5백여명의 청중들과 함께 긴급 대피했다.

시애틀의 관광명소인 스페이스 니들 타워에선 꼭대기에 있던 관광객 30여명이 갇히는 상황도 벌어졌다.

올림피아에서는 의원들과 공무원, 의사당을 방문 중이던 학생들이 건물 밖으로 대피하고 벽에 걸린 그림 등이 떨어졌다.

일부 건물에서는 벽돌 등이 지진 충격으로 무너져내려 거리와 주차 중인 차를 덮쳤다. 보잉사나 MS 등 첨단 기업들이 몰려있는 시애틀의 건물과 시설은 내진설계가 잘 돼 있어 강진에도 불구하고 인명 피해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재산피해는 수십억달러에 이를 만큼 막대할 것으로 추산된다.

28일 저녁 현재 사망자는 심장마비로 숨진 할머니 한명에 불과하고 부상자는 2백50여명이지만 사상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애틀 시내로 통하는 99번 고속도로와 올림피아 남서쪽 101고속도로 인근 도로는 산사태로 통행이 차단된 상태다. 또 워싱턴주 서부의 2만여 기업과 가정에 전기공급이 끊겼으며 많은 도로와 육교가 무너져내려 시내 진입이 봉쇄됐고 연방항공국(FAA)은 시애틀~타코마 국제공항을 폐쇄했다.

게리 로크 워싱턴주 지사는 올림피아 소재 주지사 관저와 주의사당 건물이 큰 피해를 보았다고 말했다. 폴 셸 시애틀시장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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