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공무원들의 '이유있는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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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하위직 공무원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부산시 공무원 직장협의회 연합체인 '깨끗한 공직사회를 열어가는 부산공무원들의 모임' (부공연)이 3.1절 기념식 동원에 응하지 않은 것도 그 한 예다.

부공연은 지난달 28일 자체 홈페이지(http://www.capo.pusan.kr)에서 "3.1절 행사는 공무원을 강제 동원해 치러지는 전형적인 전시행정의 표본" 이라며 동원 불응 결의를 밝혔다. 실제 이들은 행사에 나타나지 않았고 식장은 6급 이상 간부들로 채워졌다.

부공연의 한 간부는 "이제 공무원들이 맹목적으로 복종하던 때는 지나갔다" 며 "3.1절 행사가 독립운동의 숭고한 뜻을 되새길 수 있도록 행사 내용과 방법을 바꾸는 계기로 삼기 위한 행동이지 집단 항명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고 주장했다.

부공연이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공무원 구조조정과 공무원 연금법 개정이 한참 진행 중이던 지난해 4월에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또 각 직장협의회 홈페이지에 지방의원 부조리 고발센터를 운영하는 등 '지방의회 바로세우기 운동' 을 펼치기도 했다.

의회의 견제를 받는 공무원들이 의회를 '공격' 하는 것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도 있지만 이 운동이 시작되면서 일부 의원들이 자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나름대로 성과는 있었다. 부산시 직장협의회가 인사와 관련, '기능직 위주의 구조조정' '무원칙 인사' 라는 등의 주장을 밝히자 부산시는 이제 인사발령 때마다 이유를 홈페이지에 상세하게 명시할 정도로 그들의 목소리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부산시의 한 간부는 "공무원 직장협의회가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 표출해 제도에 반영하는 등 조직문화 개선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사실" 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들은 실체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부공연이 3.1절 행사 동원을 거부한 것을 꼭 잘 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국가적인 기념행사를 전시행정으로 몰고가는 것은 투쟁을 위한 투쟁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왜 그랬는지 상급자와 중앙정부 등도 곰곰이 생각하고 고칠 것은 과감히 고쳐야 한다. 오랜 권위주의 시대에 길들여진 공무원들의 체질상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으나 내부에서 스스로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공직개혁도 가능할 것이다.

강진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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