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유엔 분담금 오른만큼 한국 외교 재정립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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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올 들어 유엔 주변의 화제는 한국이 유엔에 내는 분담금이 대폭 올라 2년 후엔 세계 10위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유엔 평화유지활동(PKO)경비 부담률도 오르게 되고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세계보건기구(WHO).세계노동기구(ILO).유엔식량농업기구(FAO)같은 전문기관에 내는 분담금도 자동적으로 늘어난다.

최소한 몇 기구의 경우는 한국의 분담금 수준이 7~8위가 될 전망이다.

우리의 경제력으로 봐 이번 유엔총회의 결정이 시기상조였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미 기정 사실화한 이 결정의 타당성을 계속 따지기보다 국제기구에서 최상위권에 진입한 나라로서 우리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유엔 예산의 거의 2%나 되는 재정 지원을 하게 된 우리는 국제무대에서 거기에 걸맞은 정책을 펴고, 세계적인 이슈 전반으로 관심 분야를 넓히며, 30여개의 유엔기구에 한국인들의 진출을 확대해야 한다.

마침 올해는 우리나라가 유엔총회의 의장국을 맡게 되고, 9월 뉴욕에서 열리는 아동복지 특별총회도 주재하게 돼 유엔을 통한 한국 외교의 도약을 시도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 우리는 유엔기구들을 통해 어떠한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가.

우선 정치.안보.통상 중심 외교의 틀을 벗어나 인권.윤리.아동권익.부정부패척결.환경 등 인간개발 부문에 투자해 새로운 가치관을 개발하고 인류사회의 결속을 다지는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이러한 일을 하는 유엔아동기금(UNICEF).유엔개발계획(UNDP).유엔인구기금(UNFPA).유엔환경계획(UNEP)같은 기구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또 우리의 손길이 개발도상국가 국민에게 직접 다다를 수 있는 해외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한다.

이는 다른 문화와 외국어에 대한 이해능력이 부족해 국제사회에서 소외되고 환영받지 못하는 한국인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은 1990년대 들어 개도국을 상대로 인간의 개발을 통한 안전 보장 정책과 외교를 펴고 있다. 또 유엔 기구에 자국인을 심으려 노력해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유엔 분담금은 10위권이지만 자국인 국제기구 진출에서는 50위 이하다. 아직도 한인 직원이 한명도 없는 기구가 적지 않고 수천명의 직원을 둔 국제기구에서도 고작 2~3명의 한인 직원들이 하급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한인 진출 대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우선 순위를 둬 힘있게 밀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한국의 분담금 수준이 7~8위 내에 드는 만큼 유엔 전문기구의 고위직을 바라볼 수 있는 실력있는 후보를 찾아 밀어야 한다. 성공을 거두고 있는 국제 초급 전문가(JPO)프로그램도 확대해야 한다. 시험을 거쳐 뽑힌 뒤 국비로 국제기구에 2년간 파견돼 정상직원 자격으로 일하는 JPO의 경우 일본은 매년 70여명을 배출하나 우리는 5명에 불과하다.

외교통상부에 힘을 실어 줘 전담반을 만들고 한인 국제기구 진출 담당 특별대사를 임명할 수도 있다. 다행히 정부의 정책 수립자들이 이 문제를 장기적으로 보고 대처하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어 다행이다. 외국의 경우처럼 국회.언론.비정부기구(NGO)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후원 독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국제기구에 골고루 심어지고 자리를 잡아 그 기구의 정책 수립과 시행 등에 참여하는 날, 우리는 재정적 책임만 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무대를 움직이는 나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구삼열 <유니세프 주 일본 및 한국 겸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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