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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라인 못지않게, 아래 라인도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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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대기업 계열의 G광고회사에서 부사장을 지내다 그만두고 지금은 독립해서 소규모 광고대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부사장까지 지냈으니까 나름 잘 나간 편이었죠. 요즘 제가 겪고 있는 고충은 이런 겁니다. 업무 상 어쩔 수 없이 G사에 출입을 해야 하는데, 과거에 제 아래에서 일하던 후배들을 상대로 부탁을 하려니까 영~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내 말 한마디에 꼼짝없이 움직이던 친구들이니까 더 말하기 편한 것 아니냐고 주변에서는 이야기하지만, ‘을’의 처지가 되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 친구들도 많이 불편해 하는 것 같고요. 그럴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아십니까? 옛날에 더 잘해줄 걸 그랬다는 겁니다.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었는데, 그때 그러지 못한 것이 영 후회스럽습니다. 혹시 주변에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면 제 이야기를 꼭 전해 주십시오. 힘 있을 때 많이 베풀라고...그래야 나중에라도 편하게 부탁을 할 수 있다고...

A : 사연을 읽고 보니 선생님은 조언을 구하려 하시는 게 아니군요. ‘늦었지만 난 깨달았다. 다만 아직도 뭘 모르고 있을 잘난 자들에게는 한마디 해줘라‘ 이런 말씀이시군요.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있을 때 잘해’ 우리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화장실 갈 때 마음이 다르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있을 때는 소홀하게 대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도 하죠.

선생님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사연 중에서 특히 마음이 쓰이는 내용은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었는데’라는 부분입니다. 아마 후배들이 많이 따랐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고 표현하신 거겠죠? 또 판공비도 필경 많이 쓸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었다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시간을 되돌려 당신이 부사장이었던 때로 되돌아 가보기로 하죠. 당신은 분명 카리스마 또는 아우라가 작렬했을 것이고, 사장은 따 논 당상이었으며, 모두가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을 겁니다. 성공가도를 걸어온 당신의 일정표, 그 판때기 위에는 깨알같이 약속들이 적혀 있었을 것이고, 직장 후배 따위와 식사를 함께 할 여유조차 없었을 겁니다. 특히 두어 서열 아래 후배들은 더욱 더.

뭐~ 가끔은 당신도 부서원들과 회식자리를 가졌을 것이고, 화끈하게 쏘는 호방한 면모를 보임으로써 더욱 더 인기는 하늘을 찔렀을 겁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시간을 따로 내서 진한 대화를 가질 정도의 여유는 없었을 테죠.

아니, 가끔은 한가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배들에게 빈틈을 보이고 싶진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방으로 밀고 들어선 후배가 있었다 칩시다. 당신은 어떻게 대했을까요? 의례적인 이야기, ‘친근’이란 꿀을 잔뜩 뒤집어썼지만 알맹이는 꽝인 대화만 나누진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게 겉돌았기 때문에, 후회가 남는 겁니다. 그러나 너무 자학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니까요. 보통의 직장인들은 위만 바라보고 삽니다. 자기의 운명을 결정할 그 분들을 모시기에도 여념이 없다는 것이죠.

후배들도 관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사실 관심은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어진 시간과 자원을 나눠 써야 하는 상황에서, 당장은 영양가가 높은 상사들을 챙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윗분 눈에 들기에도 코피가 터지는데, ‘아래 것들’까지 챙기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조직이란 것이 묘해서 위로 올라갈수록 챙겨야 할 ‘위에 것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모셔야 할 분들이 줄어든다? 그건 반대로 ‘아래 것들’을 챙길 수 있는 여지가 더 생겼다는 걸 의미하죠. 자~ 눈치 빠른 선수들은 이때부터 투자 포트폴리오를 서서히 전환해서 아래 것들에 대한 투자를 늘려갑니다.

그렇습니다! 일정 수준까지는 윗분이 끌어줘서 크지만, 이 이후에는 아래 것들이 밀어줘야 계속 올라갈 수 있다는 걸, 이 자들은 아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느 경우인가요? 아래 것들에 대해서도 투자를 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윗분 모시기에만 열중 하는 편입니까? 아래 표를 보고 자신은 어디에 속하는 지 잠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연을 보내주신 선생님은 이 표에서도 확인 가능하듯이, ‘기고만장형’ 되시겠습니다. 이런 유형은 결국 후회를 하게 된다는 것,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겠죠? 그런데, 많은 상사들은 여기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아래 사람들을 열심히 챙기지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해 겉도는 ‘만년허당형’이거나, 자기가 무슨 부처라도 되는 듯 고고한 ‘유아독존형’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래 라인을 너무 표시 나게 챙기면 그것도 흠이 되긴 합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잘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습니까?

상사라는 위치는 ‘관계의 이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더 적게 베풀어도 더 많은 감흥을 유발할 수 있는 ‘부등가 교환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이죠. 이런 이점을 굳이 포기할 이유가 있을까요? 오~우 노우!

귀찮게 느껴지더라도 나중을 생각하십시오. 후배들이 회사의 주력군이 되는 그 때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회사 같죠? 그렇지 않습니다. 은퇴 후에도 당신이 몸담았던 회사가 오히려 울타리가 되어줄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그때, 아래 라인 관리가 빛을 본다는 것,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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