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에 불리한 '선분양제' 폐지 포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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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아파트 중도금 납입비중을 낮춰 소비자 부담을 줄이겠다고 나선 것은 장기적으로 현재의 선(先)분양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공정위와 건설교통부는 소비자들에게 불리하게 돼 있는 현행 공급자(주택업체)중심의 분양제도를 뜯어 고쳐야 하는 데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 당장 주택건설업체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고 주택관련 금융제도도 보완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손대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의 선분양제도 문제점은 ▶시공사 부도에 따른 불안 심리▶입주 때까지 금융비용▶모델하우스에만 의존하는 상품성 판단 등이다. 후분양제도가 정착하면 이 같은 문제점을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다. 특히 주상복합아파트 등 제도적 보호 장치가 없는 주택상품의 경우 불안요인이 모두 가셔진다.

분양대금에 대한 금융비용 부담도 없어지는 셈이다. 외환위기 직후 금융비용은 총 분양가의 25%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10~15% 선으로 떨어졌다.

다만 이 같은 제도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선 몇 가지 보완책이 필요하다. 우선 주택회사에 건설자금을 싼 이자로 빌려줘 업체들의 자금부담을 완화해줘야 한다. 내외주건 김신조 대표는 "기존의 국민주택기금 외에 싼 이자로 주택건설자금을 지원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고 제시했다.

후분양제도는 소비자들의 불안심리를 잠재울 수 있지만 분양가를 올리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건설기간 동안의 금융비용이 고스란히 분양가에 옮겨 가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 경우 현재보다 분양가가 평균 10% 정도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재처럼 선분양 때 분양계약자들이 부담하는 분양가의 금융비용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여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주택건설업체의 반발이다. 소비자들의 분양대금으로 집을 지어야 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바뀌면 자금력이 취약한 건설업체들은 대부분 문닫을 위기에 처한다는 것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선진국은 단독주택 중심의 주택공급이어서 공사기간이 3개월밖에 안되는데 우리는 땅을 사서 아파트를 짓는 데 보통 3~4년이 걸린다" 며 "이처럼 돈이 많이 묶이는 시스템으로 후분양을 도입해봤자 분양가만 올리는 요인이 된다" 고 말했다.

황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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