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션 피플] 계룡산 산새들의 대모 김기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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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립공원 계룡산(충남 공주시 반포면)중턱에 자리잡은 은선산장 주인 김기순(金基順.74)할머니의 '모닝 콜' 은 특이하다. 산장 현관과 유리창에 새들이 모여들어 온갖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불러대는 것이다.

그녀는 모닝 콜의 대가로 조그마한 플라스틱 통에 조.땅콩.옥수수 등을 한 움큼 담아 현관 앞에 내놓는다. 순간 수십마리의 새가 일제히 달려든다.

金씨가 손바닥에 땅콩을 놓고 휘파람를 불면 곤줄박이 등 가장 가까이 있는 산새가 날아와 순서대로 챙겨간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새들은 이따금 산장에서 쉬고 있는 金씨 머리 위에까지 날아들어 이마를 쪼아댄다. 金씨의 바지 호주머니를 뒤지기도 한다.

그녀의 몸이 새들의 안식처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金씨와 산과의 인연은 1960년에 시작됐다. 대전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던 金씨 부부는 등산이 취미였다.

히말라야.알프스 산맥.일본 후지산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을 두루 등정할 정도로 '등산광' 이던 이들 부부는 산을 찾을 때마다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 등을 싸가지고 가 새가 있는 곳에 뿌려주었다.

71년에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대한산악연맹의 회원들과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돈을 모아 은성산장을 지었다. 그러나 산장 관리자가 나서지 않아 77년 사업을 정리하고 남편과 함께 아예 산장에 정착했다.

이때부터 金씨는 먹을 것이 부족한 새와 야생 동물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야생동물용으로는 산장 주변에 사료를 뿌려 준다. 하루 사용하는 사료량은 20㎏ 정도. 한해 겨울에 새 모이와 동물 사료값으로 30만원 이상 든다.

그러나 겨울철 외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는 생존능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찾아드는 새는 곤줄박이를 비롯, 할미새.비둘기.박새 등 다양하다. 고라니.너구리.토끼 등은 金씨에게 신세지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그녀는 조난당한 등산객 30여명을 구한 적이 있고 산장앞 은선폭포에서 자살하려는 젊은이 10여명을 설득해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등산객들은 그녀를 '계룡산 산신령 할머니' 로 부른다.

金씨는 "산은 인간과 동물에게 영원한 안식처" 라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새와 짐승을 돌보며 살겠다" 고 말했다.

계룡산=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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