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금리 1% 시대 '예금생활자' 당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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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공기업에서 30년 동안 근무하다 외환위기 전인 1996년에 명예퇴직한 金모(60)씨는 퇴직금 2억5천만원 중 1억5천만원은 은행에, 나머지 1억원을 공모주에 투자했다. 그러나 지난해 주가가 하락해 3천만원을 까먹었다. 더구나 매월 1백만원 정도씩 올리던 이자수입이 최근 예금금리가 낮아지면서 세금을 빼면 60만원대로 줄었다.

은행이자만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金씨는 은행예금 대신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 상품으로 갈아타는 것을 알아보고 있다. 아파트 규모를 줄이는 것도 함께 생각하고 있다.

금리가 계속 낮아지면서 金씨처럼 퇴직금 등을 굴려 생활하는 금융소득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97년만 해도 은행의 평균 예금금리가 14.2%로 물가상승률(4.5%)을 감안해도 10%에 가까운 이자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평균 예금금리가 6.3%로 떨어진 가운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2%를 기록해 물가상승률과 세금을 뺀 실질금리는 1%대에 불과하다.

금융권의 수신금리는 지난 1년 동안 평균 1.75%포인트 낮아져 국민 전체의 금융소득이 연간 9조4천억원 정도 줄어든 것으로 추산됐다.

예금금리가 낮아지자 안전하지만 금리가 낮은 은행예금은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다. 이와 달리 운용 성과에 따라 원금을 갉아먹을 수도 있는 위험 때문에 그동안 고객들이 떠났던 투신과 종금사로 고금리를 찾아 돈이 다시 몰리고 있다. 안정성보다 수익성을 모색하는 고객의 발길이 잦아진 것이다.

지난해 12월 7조3천억원이 줄었던 투신사에 올 1월에는 7조4천억원의 돈이 몰렸다. 특히 마음대로 입출금할 수 있는 투신사의 단기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에는 한달새 15조7천8백억원의 자금이 들어왔다.

신현직 동양종금 과장은 "지난달부터 금융소득으로 생활하는 퇴직자의 예금에 대한 문의가 급증했다" 며 "예금보호 한도인 5천만원 이내로 쪼개 가족 이름으로 3개월짜리 어음을 많이 사고 있다" 고 말했다. 김성엽 하나은행 재테크팀장은 "고금리를 주겠다며 유혹하는 유사 금융회사에 현혹돼선 안된다" 며 "절세상품이나 금리가 다소 높은 제2금융권 상품을 예금보호 한도 안에서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 조언했다.

정철근.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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