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희 박사가 말하는 영재교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초등학교 3년인 정호는 특별히 가르치지도 않았지만, 수학 실력은 이미 중학교 수준이다. 보통 아이들이 한 학기 걸려 끝낼 수학 문제집을 1주일도 안돼 덮을 정도로 수학에 심취했다. 정작 문제는 이제부터다. 정호는 학교에 다니기 싫다고 떼를 쓴다. 부모는 이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녀야 하나 생각도 해본다.

초등학교 5년인 근호는 대학 수준의 위상수학 문제를 혼자 책으로 공부한다. 지금은 초등학교에 다니지 않고, 대학에서 1주일에 며칠씩 청강하며 근근이 학습 기회를 찾고 있다.

부모는 걱정이 태산이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초등학교 졸업장조차 없는 아이가 되게 할 수도 없다. 아이들의 능력은 뛰어난데 부모는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찾지 못해 결국 학교 부적응아가 돼버린 것이다.

최근 연구 결과 지적 능력은 70%가 유전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생후 6개월 동안의 환경에 20%가, 그 이후에 10%가 결정된다고 한다. 이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 쌍생아의 지능을 연구한 결과다.

지능이 특별히 우수해 정규 교육과정만으로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아이들은 전체 아동의 1% 정도다. 상위 0.1%에 해당하는 아이는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아도 또래들보다 지능이 2~5년 정도 앞서 발달해 부모의 골치를 썩인다.

그런가 하면 지적 능력이 골고루 발달하지 않고 특정 분야에서만 조숙한 아이도 있다. 이 경우는 문제아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아이들은 능력 수준과 관심이 각기 다르다. 이렇게 다른 아이들에게 우리는 경제적인 이유와 편의상의 이유로 같은 교육 내용을 같은 방법으로 가르친다.

그러나 만약 이 아이들이 각자의 지식수준.사고방식.관심에 걸맞은 교육을 받는다면 누구나 잠재력을 최대로 계발할 수 있다. 대단히 우수한 아이, 우수한 아이, 보통인 아이, 부진한 아이에게 각각 알맞은 교육은 각기 다르다. 이들 모두가 자신의 특성에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때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하게 된다. 그래서 영재교육이 필요하다. 바로 수준별 교육인 것이다.

영재가 커가는 유형은 네 가지가 있다. 어려서부터 신동이었고 지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해 역사적 성취를 이루는 영재, 어려서는 떠들썩한 신동이었으나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간 영재, 어려서는 평범했으나 후에 창의적인 성취를 하는 대기만성형 영재, 발굴도 계발도 되지 않는 영재가 그것이다.

부모.가정.학교.사회에서 어떤 사람과 어떤 기회를 만나는가에 따라 타고난 능력을 발휘하는 정도는 매우 다르다. 뛰어난 능력을 타고 나도 제대로 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면 타고난 잠재력은 사장된다. 이는 개인의 손실이자 국가적 손실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