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의 대설이 시민들을 뭉치게 했을까.
15일과 16일 많은 시민은 모처럼 흐뭇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골목길에서, 도로에서 주민들이 내집앞 눈을 치우는 광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웃 없는 이웃이라는 아파트가 오늘은 정말 사람 사는 마을 같아 보였어요. " 15일 자정 무렵 회식을 마치고 지하철로 귀가한 진성돈(34.서울 노원구 월계동 삼호아파트)씨는 시장처럼 북적대는 단지 입구를 보고 놀랐다고 했다.
"주민 30~40명이 한창 눈을 치우고 있더라고요. '경비원 몇명만으로는 버거워 보여 주민들이 나섰다' 는 아내의 말에 함께 빗자루를 잡았지요. "
같은 날 오후 서울 방배동 경남아파트에서도 주민 1백여명이 밤늦게까지 눈을 치웠다. 주부와 학생 자녀에 귀가한 가장들도 가세했다.
8동 대표 남금옥(南金玉.44)씨는 "월요일인 12일 동(棟)대표회의에서 지난달 폭설 때 주민들이 제설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모두 반성했다" 며 "또 눈이 내리기에 '주민들이 나서자' 는 안내방송을 했다" 고 말했다.
15일에 이어 16일에도 이렇듯 대도시 아파트 곳곳에서 시민들의 눈 치우기가 벌어졌다.
빗자루.삽.망치.양동이 등 눈을 치울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고 나선 시민들은 "몇시간 땀을 흘리니 기분이 말끔해졌다" 고 했다.
지난달 폭설로 곳곳에 우중충한 얼음덩이가 남은 도로변 인도도 이번엔 달랐다. 16일 오전 1시 서울 신촌 로터리 부근 인도의 얼음을 깨던 전병구(28.카페 종업원)씨는 "눈을 치우지 않는 건 손님이 오는 걸 막겠다는 뜻 아니냐" 며 웃었다.
을지로 3가의 이범준(29)씨는 "앞으로 자기 점포 앞 눈을 치우지 않는 곳은 창피해질 것" 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제설 담당 최만식(崔萬植.6급)씨는 "제설작업의 한계를 시민들이 충분히 메워주고 있다" 며 "지하철이 무료 운행을 했던 15일 저녁 그 많은 인파가 몰리고도 사고가 없었던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것" 이라고 의미를 뒀다.
김포공항에는 지난 폭설 때와 달리 항공기 결항을 탓하는 항의가 뚝 끊겼다. "몇차례 폭설 경험으로 승객과 항공사의 대응이 성숙한 것 같다. " 한 항공사 직원의 말이다.
'나부터 지키는 시민정신' 이 사회를 움직인다.
정현목.손민호.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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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기초를 다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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