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다지자] 41. 폭설속에 빛난 시민정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32년 만의 대설이 시민들을 뭉치게 했을까.

15일과 16일 많은 시민은 모처럼 흐뭇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골목길에서, 도로에서 주민들이 내집앞 눈을 치우는 광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웃 없는 이웃이라는 아파트가 오늘은 정말 사람 사는 마을 같아 보였어요. " 15일 자정 무렵 회식을 마치고 지하철로 귀가한 진성돈(34.서울 노원구 월계동 삼호아파트)씨는 시장처럼 북적대는 단지 입구를 보고 놀랐다고 했다.

"주민 30~40명이 한창 눈을 치우고 있더라고요. '경비원 몇명만으로는 버거워 보여 주민들이 나섰다' 는 아내의 말에 함께 빗자루를 잡았지요. "

같은 날 오후 서울 방배동 경남아파트에서도 주민 1백여명이 밤늦게까지 눈을 치웠다. 주부와 학생 자녀에 귀가한 가장들도 가세했다.

8동 대표 남금옥(南金玉.44)씨는 "월요일인 12일 동(棟)대표회의에서 지난달 폭설 때 주민들이 제설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모두 반성했다" 며 "또 눈이 내리기에 '주민들이 나서자' 는 안내방송을 했다" 고 말했다.

15일에 이어 16일에도 이렇듯 대도시 아파트 곳곳에서 시민들의 눈 치우기가 벌어졌다.

빗자루.삽.망치.양동이 등 눈을 치울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고 나선 시민들은 "몇시간 땀을 흘리니 기분이 말끔해졌다" 고 했다.

지난달 폭설로 곳곳에 우중충한 얼음덩이가 남은 도로변 인도도 이번엔 달랐다. 16일 오전 1시 서울 신촌 로터리 부근 인도의 얼음을 깨던 전병구(28.카페 종업원)씨는 "눈을 치우지 않는 건 손님이 오는 걸 막겠다는 뜻 아니냐" 며 웃었다.

을지로 3가의 이범준(29)씨는 "앞으로 자기 점포 앞 눈을 치우지 않는 곳은 창피해질 것" 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제설 담당 최만식(崔萬植.6급)씨는 "제설작업의 한계를 시민들이 충분히 메워주고 있다" 며 "지하철이 무료 운행을 했던 15일 저녁 그 많은 인파가 몰리고도 사고가 없었던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것" 이라고 의미를 뒀다.

김포공항에는 지난 폭설 때와 달리 항공기 결항을 탓하는 항의가 뚝 끊겼다. "몇차례 폭설 경험으로 승객과 항공사의 대응이 성숙한 것 같다. " 한 항공사 직원의 말이다.

'나부터 지키는 시민정신' 이 사회를 움직인다.

정현목.손민호.홍주연 기자

'

▶기획연재 '기초를 다지자'

(http://www.joins.com/cgi-bin/sl.cgi?seriescode=717&kind=sl)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