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민중운동 기록한 '196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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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눈 밝은 독자라면 제목만 봐도 무슨 책인지 쉽게 알 것 같다. 책은 흔히 '68운동' '68세대' 라는 말로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1968년' 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분출했던 격변의 정치적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대표 저자인 타리크 알리(58)는 파키스탄 출신으로 현재 영국의 좌파계열 잡지인 뉴 레프트 리뷰의 편집자다. 당시 영국 68운동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활동했다.

따라서 이 책에는 33년 전 그가 청춘을 걸고 매진했던 '혁명적 정치운동' 에 대한 경험담과 그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짙게 깔려 있다.

물론 이 책에서 그 '아쉬움' 은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실마리가 된다. 저자들은 지금 세계의 현실(책은 98년에 나왔다)을 지극히 비관적으로 본다.

요원의 불길같았던 68운동의 숭고한 이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유토피아가 실종된 시대' '뻔뻔스런 기회주의가 억압하는 문화' 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저자들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68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오늘에 되살리려 애쓴다.

◇ 정치적 달력〓책은 68년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마치 달력 넘기듯이 보는 '역사신문' 같다.

이런 체계와 짜임새는 이 특정한 연도가 세계적으로 어떤 공통분모로 엮이는 지 연관성을 살피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덕분에 우리는 68운동이 '하나의 우연한 사건' 이거나 '계획없는 반란' 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알리는 "68년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설명하고 보고함으로써 망각의 심연으로 수장된 '그 시기의 정치학' 을 건져내려고 했다" (3백66쪽)고 밝혔다.

단순한 사건의 일람표, 혹은 연대기가 아닌 '정치적 달력' 으로서 이 책이 갖는 소중한 가치가 여기서 비롯된다.

응당 68운동하면 떠오르는 성(性)과 마약.로큰롤 등 자유분방한 '환각적 이미지' 는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 연대(連帶)가 가능했던 사회〓알리는 68년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시도였으며, 정치와 문화, 그리고 개인간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20쪽)고 정의했다.

바로 일체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할 때라는 믿음, 그게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출발점' 이었으며 국제적 연대가 작동할 수 있었던 힘이라고 보았다.

권위의 붕괴는 여러가지 형태로 드러났다. 그 중 베트남전 반전(反戰)운동은 68운동의 상징이다. '골리앗' 미국의 콧대를 꺾는 '다윗' 베트남에 세계의 민중들은 박수를 보내며 자연스레 연대했다.

68년이 도래하기 석달 전 볼리비아의 계곡에서 미국 CIA에 살해된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운동가 체 게바라는 "제2, 제3의 베트남을 창조하자" 며 미국을 압박했다. 더불어 세계의 박해받는 민중을 위한 그의 투쟁은 '어떤 다른 세계' 에 대한 열망을 부추겼다.

그러나 세계의 기성 정치가들은 이런 민중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를 꿈꾸었던 체코 '프라하의 봄' 은 68년 8월 소련군의 침공으로 압살됐다.

그리스.스페인.멕시코 등에서 일어난 반독재 투쟁도 성공하지 못했다. 프랑스 파리의 5월, 미국 버클리의 7월도 역사 속으로 묻혔다. 68운동은 패자의 역사로 감춰졌다.

◇ '차이의 문화' 를 넘어서〓정치를 흔히 '가능성의 예술' 이라고 한다. 그러나 알리는 "이제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기는커녕 어떻게 해서든지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이 되었을 뿐" (3백41쪽)이라고 한탄한다.

알리는 그 정치적 몰락의 원인을 두가지로 든다. 하나는 레이건과 대처 등 80년대 공격적 지도자들이 전파한 신자유주의의 물결이며 다른 하나는 '현실 사회주의' 의 와해다.

이것이 참여 정치의 포기를 촉진해 "절망의 씨앗을 뿌리고 '차이의 문화' 에 뿌리를 둔 증오가 무성하게 자라는 토양" (3백43쪽)을 만들어 냈다.

인종주의를 표방한 독일의 신(新)나치주의자들과 프랑스의 국민전선 등의 발호를 보라. 저자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68운동의 현재성과 가치를 되살리며 중요한 경고를 잊지 않는다.

"끊임없이 비타협적인 질문을 던져대는 이단자와 가차없는 비판과 들떠 있는 낭만이 결여된 문화는 조만간 쇠퇴하고 말 것이다. " (3백46쪽).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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