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다지자] 40. 고질적 분식회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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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분식회계를 한 회사의 경영자나 재무담당자들이 장부조작을 범죄로 여기지 않는 모습을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

분식회계를 장부상 숫자 몇개 고친 것에 불과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한 회사 임원이 "당장 현찰을 빼돌리는 것도 아닌데 그게 뭐 대수냐" 는 식으로 말해 입을 다물지 못한 기억이 있다.

그 때문인지 우리 기업들의 회계장부는 한 마디로 엉터리다. 예컨대 기아자동차는 1944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단 1년만 흑자를 냈는 데도 회사가 부도난 1996년까지 줄곧 흑자로 장부를 작성해 왔다.

대우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다. 분식회계 실사 결과 71년 설립 후 한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회계장부를 조작한 금액이 약 23조원에 달한 것으로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드러났다.

해마다 8천여개 기업이 금융감독원에 감사 보고서를 제출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회계장부를 내는 곳은 많아야 절반 정도다.

특히 상장회사 중 4분의1이 기업실적을 부풀리고 조작한 회계장부를 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장 흔하고 악질적인 분식회계는 부외(簿外)부채다. 빌린 돈을 아예 장부에 기록하지 않는 게 그것이다. 부채를 줄여 좋은 회사처럼 보이기 위해 저지르는 행위다.

분식회계는 마약과 비슷하다. 한번 장부조작을 하면 회사가 망할 때까지 계속 해야 한다.

그러나 정밀검사를 하면 금방 들통나게 마련이다. 회계장부 조작은 심하면 나라 경제를 망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대 범죄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대형 기업.금융사고 뒤엔 항상 회계장부 조작이 도사리고 있었다. 한보 6천9백20억원, 기아차 3조원, 아시아자동차 1조5천억원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한보와 기아의 장부 조작은 97년 외환위기를 부른 주범이 됐고 대우의 장부조작은 지금도 우리 경제를 옥죄고 있다.

유재규 <금융감독원 회계제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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