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회 대표연설 굳이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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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표류하던 임시국회가 가까스로 정상화했으나 그 행보가 소걸음이다.

어제 총리의 국정연설로 하루를 때웠고, 오늘부터 교섭단체 대표연설로 3당에서 하루 한명씩 3일을 보낸다.

국회 전체가 하루 30~40분의 '연설' 에만 나흘 동안 매달리고 그것을 위해 장관들이 매일 국회를 오가야 하니 낭비다.

대표연설이 과연 필요한 건지, 하루에 몰아 실시해선 안되는지 국회 운영의 내실화를 위한 재점검이 요구된다.

국회 대표연설은 6대 국회부터 선을 보여 11대 때 국회법에 명시, 정착됐다.

6대 때는 대통령의 연두교서 뒤 여야 각당 대표들이 그에 대한 질의의 형태로 첫선을 보였다.

일본 의회를 본뜬 것으로, 지금도 일본은 매 회기 초 총리의 국정연설과 각 당 대표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대통령제 미국엔 없는 제도다.

초기엔 대정부질문 형식을 취하던 대표연설이 이젠 그냥 '연설' 로 굳어졌다.

물론 정부를 향한 정책성 질의가 없지는 않지만 주 내용은 여야 모두 상대당 공격이다.

국정 현안에 대한 합의점을 도출하겠다는 취지도 노력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표연설이 각광받은 때가 있었다.

5공 후반기 민주화 투쟁이 불붙기 시작하던 12대 국회에서다.

당시는 야당의 활동이 언론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때이니 야당 총재의 국회 연설은 언론마다 크게 다뤄졌다.

당연히 야당으로선 국회 대표연설을 대정부 공격의 주요 무기로 활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기자회견을 비롯, 발표할 수 있는 무대가 많고 언론에도 내용에 따라 크게 반영되고 있다. 국회에서 별도 시간을 할애해 '예우' 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정작 시급히 다뤄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 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대표연설의 내용들은 대정부질문에서도 똑같이 제기되니 중복이요, 시간낭비일 뿐이다.

이젠 짝수월마다 임시국회를 열어야 하는 상시국회 체제가 됐다. 그 때마다 대표연설로 시간을 허송할 만큼 작금의 내외상황이 한가롭지 않다. 굳이 한다면 정기국회 때 한차례, 그것도 하루에 몰아 실시하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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