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낳을 둥지 담배필터로 단장 … 도시 새 ‘슬픈 생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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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공 보푸라기를 바닥에 깐 박새의 둥지.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도시에 사는 박새의 새끼들은 알을 깨고 나오면 어미 새의 포근한 깃털이 아니라 풀어헤친 담배 필터나 테니스 공의 보푸라기를 만난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오정학·박찬열 박사팀은 강원도 점봉산과 서울 청량리 홍릉 숲에 설치한 인공 새집 속 둥지 19개를 조사한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23일 밝혔다.

점봉산 새집의 경우 모두 이끼·나뭇잎 등으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알을 품는 가운데 일부분은 솜털·깃털 등 자연 재료를 써 포근하게 했다. 그러나 도심 속 둥지의 경우는 삭막했다. 이끼로 기초를 다진 뒤 알 품는 자리는 담배 필터를 찢어 솜처럼 만들거나 테니스 공의 보푸라기를 모아 쓰기도 했다. 이는 도심의 새들이 어쩔 수 없이 주위 환경에 적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홍릉 숲에서 새끼 10마리를 기르는 박새 한 쌍이 잡아 오는 곤충은 하루에 최소 197마리, 최대 498마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형 카메라를 새집에 설치해 집계할 수 있었다. 해충 구제 효과를 비용으로 따지면 인공 새집 하나당 48만원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추정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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