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여권 관리도 국제 수준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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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2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관광차 이곳을 찾은 임모(33)씨는 입국 심사대에서 곧바로 연방이민국(INS)으로 인계됐다.

그는 미국 비자를 받은 과정 등을 12시간 동안 조사받은 뒤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지난해 12월 16일 LA 국제공항. 한 한국 여고생이 위조된 비자가 붙은 여권이라는 의심을 사 INS로 넘겨져 임씨처럼 12시간의 조사 끝에 추방됐다.

둘 다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미국 비자를 받았고, 여권 역시 본인 게 틀림없었다. 우리 여권이 불신을 받는 바람에 우리 국민이 고통받는 적나라한 사례다.

이들은 서울로 돌아와 외교통상부에 항의했지만, 외교부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만무했다.

위조하기 쉬운 여권을 발급해 국제 범죄조직의 표적으로 떠오르게 한 것이 죄라면 죄이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는 위조 방지용으로 여권을 새로 만든 지 3년여 만에 다시 여권을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지만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국제 사회에서의 신뢰도를 어떻게 회복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국민이 여권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것도 문제다. 해외 공관에 근무했던 한 외교관은 "여권 분실 신고를 하는 관광객 가운데는 '공관에 신고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소홀하게 다뤘다' 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고 말했다. 개중에는 범죄조직에 여권을 판 경우도 있다고 이 관계자는 귀띔했다.

이 때문에 동남아와 중국 등지에선 위조된 한국 여권이 넘쳐난다. '대담하게도' 수십 통의 한국 여권이 국제 택배망인 DHL을 통해 동구권 범죄조직에 배달되다 적발되는 경우도 한달에 한건 꼴이다.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위조 여권이 국제 범죄조직에 흘러드는 것은 우리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던 삼합회.마피아.야쿠자 등이 우리도 모르게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사건' " 이라고 말한다.

범죄 역시 세계화하면서 우리의 얼굴인 여권의 관리와 시스템도 국제 수준으로 정비돼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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