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매상' 식 대북교류 뭘 뜻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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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의 개혁.개방 의지가 확연해진 데 발맞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남북관계가 "지금까지의 소매상에서 도매상식으로 발전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대북 교류의 규모 확대를 전망한 것인지, 정부 정책을 도매상식으로 전환해 나가겠다는 뜻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정부도 북의 변화를 범상치 않게 바라보고 있는 만큼 능동적이고 차질 없는 대책 마련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방중(訪中)을 계기로 개방을 향한 북한의 발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유럽 각국과의 수교도 봇물을 이루는 등 개혁 노력에 대해 국제사회도 화답하고 있다.

특히 신임 부시 미국 대통령이 金대통령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이른 시일 안에 만나 의견을 교환키로 한 것도 불투명하게만 보였던 한.미간 대북정책 조율에서 고무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남북은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충격과 이벤트 중심의 1단계 교류를 거쳐 북의 개방 선회로 실질적인 교류 단계로 접어든 셈이다.

1단계에선 첫 만남에 따른 시행착오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2단계에선 혼선과 차질이 용납될 수 없다.

특히 정부 일방의 이벤트성 사업으로 국민적 합의 도출에 실패한 점이 되풀이돼선 안된다.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책 투명성도 없이 행사 위주로 추진되다 보니 대북정책이 신뢰를 잃고 국민 사이엔 의구심이 자리잡았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끌려만 다닌다느니, 퍼주기만 한다느니 하는 비판까지 불거졌다.

2단계 교류의 급물살이 밀려오는데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여전히 이런 문제점들을 시정하지 못한다면 걱정이다.

새해 대북정책은 북의 개혁.개방 노선을 어떻게 하면 우리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수용할 것인지, 1회성 이벤트가 아닌 제도화를 통해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비전이 보다 분명하게 제시돼야 한다.

기왕 金대통령이 '도매상' 식 대북교류를 언급한 이상 지난해와는 다른 차원의 큰 틀의 대북정책이 추진되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일회성 이벤트 사업으로 그치지 말고 정말 도매상처럼 큰 틀의 빅딜이 남북 당국에 의해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경제원조와 군사적 긴장완화.군축과 같은 평화정착을 위한 핵심적 논의가 올해부터는 남북대화의 기본 축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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