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설 민심의 소리 귀담아 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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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설 연휴다. 전국 도로가 고향찾는 설레임으로 넘쳐난다. 설레임 그대로 차례상마다 행복이 가득 담겨지길 기원한다.

그러나 설날 아침 주고받을 덕담거리가 보이질 않으니 답답하다. 끝도없는 정치판 흙탕물 싸움이 민초들의 희망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친척 ·친지가 모처럼 만나는 사랑방마다 한심스러운 정치가 화두에 오를텐데 뒤따를 실망과 분노가 민망스럽다.

여야 지도자 모두 일 손을 잠시 놓고 정국 구상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번만은 국민을 감동시키는 큰 그림을 내놓아야 한다.지난 연말과 같은 꼼수정치나 또다시 구상하고 있다면 그건 국가적 불행이다.

새해들어 국민들은 국정쇄신과 초당적 협력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여야가 보여준 것은 의원꿔주기 ·DJP공조복원 ·안기부자금수사 ·장외정치 ·방탄국회 등 고작 술수정치요 구태정치였다.민심은 실망을 넘어 자조 ·분노하고 있다.

지도자들의 정국구상은 민심이반현상이 심각하다는 현실 파악, 그리고 그 것이 네탓아닌 내탓때문이라는 자성부터 출발돼야 한다.그 바탕위에서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미래를 향한 새비젼을 제시해야 제대로된 '구상'이다.

우리는 정초부터 여권에서 불고 있는 강성 기류를 우려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의원꿔주기에서부터 안기부자금수사에 이르기까지 정부 ·여당의 정국운영 방향은 야당을 옭죄고 민주당 ·자민련을 묶는 숫자정치 ·힘의 정치를 구사하겠다는 의도로 읽혀진다.

내 잘못은 하나도 없고, 국정혼란과 경제실정까지 모두가 '야당과 언론탓'이라고 몰아부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강한 정부, 강한 여당'이란 구호속엔 일종의 보복의 느낌마저 감지된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떠했던가. 강한 정부란 명분에서 이뤄진 의원꿔주기와 DJP공조복원은 오히려 정국불안의 불씨가 됐다. 여야는 극한 대결 국면으로 흘렀고 정치불신만 더욱 깊어지지 않았는가.

金대통령과 여당지도자들은 새해들어 시도한 정치가 오히려 정국불안을 낳고 정치후퇴를 가져오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설날 구상은 바로 그러한 현실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이회창(李會昌)총재도 여당탓만 할게 아니다.

새정치를 위한 큰그림의 대안을 제시했었는지, 여당 공세에 정략적 대응은 없었는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안기부자금 수사를 야당파괴 공작으로만 치부할게 아니라 잘못된 점이 있으면 과감히 털어내는 대결단을 보여줘야 한다.

지역감정이 가져다주는 반대급부나 파당적 이해득실에만 매달린다면 그런 설날구상 역시 기대할 게 없다.

정치권에 바란다. 설 민심의 소리를 정확하게 듣고 제발 깊이 반성하길, 그래서 귀향이 끝난 뒤엔 달라진 상생(相生)정치가 선보여주길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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