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금융, 이정도는 돼야] 손해배상 족쇄로 조기경보에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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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국내 신용평가사의 신뢰성과 위상도 높아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의 위력이 드러난 대표적 사례는 지난해 7월 말 한국기업평가(KMCC)가 현대건설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떨어뜨리면서 곧바로 시장이 반응한 것이다.

등급이 조정되자마자 현대건설의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했고, 현대건설은 자구방안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를 맞았다. 현대건설은 결국 10월 말에 1차 부도를 냈다.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이 딱 들어맞는 예측만 한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 전에는 A등급을 매겼던 회사들이 3개월이 못가 부도나기도 했다.

현재 국내에는 한기평과 한국신용평가.한국신용정보 등 3개사가 신용평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으며 서울신용정보평가 등이 평가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상태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신용평가 제도의 확립이 자본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신용평가사의 자체 노력과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국투신운용 이윤규 이사는 "시장에 따라가기보다 시장을 앞서가는 평가를 해야 한다" 고 주문했다.

해외 신용평가사의 경우 등급조정뿐 아니라 수시로 보고서를 통해 시장에 경고를 보내지만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사전 예고 기능이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은 신용평가 관련 제약이 너무 많다고 주장한다.

특히 신용평가사가 내놓은 등급평가에 문제가 있을 때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증권거래법상에 직접 명시한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등급평가는 회계감사와 달리 기본적으로 대상 회사의 채무이행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 이라며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신용평가기관에는 면책권을 주면서 자유로운 의견 개진의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신용평가가 충분히 정착되지 못한 우리 현실에서 책임조항을 바로 빼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는 입장이다.

금융연구원 김동환 박사는 "신용평가사의 영업 기반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존 복수평가(채권발행시 2개 회사에서 신용등급을 받는 것)제도를 유지하고 제한된 범위에서 임의평가(발행회사 요청없이 평가하는 것)도 허용할 필요가 있다" 면서도 "신용평가사들도 향후 치열한 경쟁에 대비해 인력 보강과 자료 구축 등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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