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총재 특검·민생꺼내 여론 껴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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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야 모두의 정치자금 의혹은 특별검사제에 맡기고 경제살리기에 나서자. "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16일 신년 기자회견은 이같은 메시지로 요약된다.

李총재는 안기부 예산 총선유용 의혹을 둘러싼 정쟁(政爭)의 해법으로 '특검제' 를 제시하면서 경제.민생문제에도 회견문 상당부분(7쪽 분량 중 3쪽)을 할애했다.

특검제를 내세운 이유로 李총재는 "검찰은 현 정권의 사주를 받았다. 현 정권은 검찰을 앞세워 야당 파괴에 나섰다" 는 '검찰의 비중립성' 을 들었다.

따라서 특검제 아래에선 "기꺼이 협력하고, 만약 안기부 예산 유용이 사실이라면 사과하겠다" 는 논리를 폈다.

"李총재의 이런 특검제 논리를 여당이 받아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고 고위 당직자는 말했다.

따라서 李총재의 회견은 검찰 수사의 공정성 시비를 확대시켜 여론을 선점(先占)하려는 측면이 엿보인다.

李총재의 현 정부에 대한 비난 발언은 거칠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완전히 딴 세상 얘기(연두회견)를 한다" "金대통령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낀다" "金대통령은 국민탓, 언론탓, 야당탓에 국정위기가 왔다고 강변하고 있다" 고 주장했다.

또 "金대통령이 말하는 '강력한 정부론' 은 언론과 야당을 주적(主敵)으로 삼는 공포정치" 라고 단정했다.

"이런 표현을 선택한 것은 李총재가 현 정국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의지표시" 라고 이 당직자는 말했다.

그러면서 李총재는 다른 한쪽으로 '민생으로 돌아가자' 는 카드를 내밀었다.

"현 정권의 공작정치 때문에 경제와 민생이 방치되고 경제회복도 있을 수 없다" 는 게 李총재의 설명이다.

총재실의 한 관계자는 "정국 파행사태가 장기화하면 정치권 전체를 비난하는 쪽으로 여론 흐름이 잡힐 수 있다" 면서 "우리당은 그런 속에서도 민생을 챙긴다는 점을 李총재는 보여주고 싶은 것" 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가파른 여야 대치 속에서 '3김(金).1이(李)' 구도가 조성되는 상황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특검제.민생 카드로 金대통령을 직접 압박하겠다는 메시지" 라는 것이다.

李총재가 "YS와 만날 계획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지금 만나면 '안기부 자금 수사에 관해 공동전선을 편다' 는 억측이 돌 것" 이라며 즉답을 유보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노재현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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