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본질 비켜간 우리법연구회 ‘해체 불가’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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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우리법연구회의 전·현직 회장이 지난 주말 이 단체의 해체 요구를 반박하고 나섰다. 전 회장인 문형배 판사는 블로그를 통해 “튀는 판결을 한 판사들이 회원이 아니고, 연구회를 해체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강기갑 의원 무죄판결과 관련, “우리법연구회의 영향이 없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게 불가능한 만큼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 달라”고 요구했다. 현 회장인 오재성 판사도 “비밀 단체도 아니고 회원 명단도 공개한다”면서 해체 요구를 일축했다.

문 판사는 최근 편향 논란을 일으킨 판결에 회원 판사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폭력으로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민노당 소속 당원들에 대한 공소를 기각했고, 민노당 후원회에 참석한 회원 판사 사안은 쏙 뺐다. 또 한나라당이 지적한 편향 판결을 내렸던 회원은 전체의 10%도 안 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한마디로 사안의 본질은 외면한 채 논점이 엇나간 논리나 숫자노름으로 해체 요구를 넘어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우리가 거듭 강조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법원 내에 사조직이 있다는 점이다. ‘편향 판사’ 회원이 10%면 괜찮고, 50%면 문제가 되는 것이 본질이 아닌 것이다. 본인들은 순수 연구모임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동안 정치성과 파당성을 보여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수 회원이 지지하는 대법원장이 취임하셨고(…)이제 주류의 일원으로 편입된 이상 기존 주류의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발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법원 내에 학술단체가 아니라 ‘사법권력을 지향하는 특정 집단’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 아닌가. 신영철 대법관 파동, 법관의 인사 참여 요구 등도 그 연장선인 것이다. 이러니 우리 사회 각계에서 우리법연구회의 자진 해체 요구가 봇물 터지듯 나온 것이라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특히 논란이 일면서 회원 10여 명이 탈퇴한 이유도 되새겨봐야 한다.

사법부 개혁은 자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서울중앙지법이 재정합의부를 신설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지만 사조직이 끝내 발호(跋扈)하고, 이를 스스로 도려내지 못한다면 외부에서 ‘메스’를 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