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은행 고객 차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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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선진국에서는 기여도에 따라 고객을 대우하는 영업 방식이 관행화된 지 오래다.

미국 시티은행(뉴욕 기준)의 경우 고객들에게 네가지 보통예금 계좌를 선택하도록 한다.

기본 거래만을 택하면 매월 일정금액을 유지할 필요가 없지만 수표 사용이나 돈을 찾을 때 수수료를 내야 한다.

이에 비해 매월 1만달러의 평균 잔액을 유지해야 하는 최상급 서비스 계좌를 선택하면 대부분의 은행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50달러의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

영국 3위의 은행인 로이즈TSB의 경우 통장에 남아 있는 돈보다 10파운드를 넘는 수표 발행이나 인출이 있을 경우 5파운드를 청구하고 분실 수표를 정지시킬 때는 10파운드를 물린다. 요크셔은행은 연간 일별거래실적 자료를 뗄 때 1백파운드(약 18만7천원)를 요구한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은행 지점도 이런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씨티은행은 매월 1백만원 이상의 평균잔액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씨티원통장' 에 가입하면 다른 은행 자동화기기에서 돈을 인출해도 수수료가 붙지 않으며 타행송금도 월 10회까지 수수료 없이 할 수 있다. HSBC는 원칙적으로 3백만원 이상을 입금해야만 통장을 만들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을 받거나 예금을 한 손님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 도움도 안되는 사람에게 똑같은 혜택을 줄 수는 없지요. 은행은 기본적으로 돈을 버는 곳입니다. " 씨티은행 서울지점 정회승 지배인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내 시중은행들은 현행 수수료가 원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하면서도 고객들의 반발을 우려해 새로운 수수료 체계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제일은행이 시중은행 중 처음으로 신규 고객이 월평균 잔액을 10만원 이상 유지하지 못할 경우 계좌유지 수수료를 매월 2천원씩 물리겠다고 발표하자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인실 박사는 "매월 1백만원 정도의 보통예금을 하지 않는다면 은행 수익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며 "은행들이 수익성의 관점에서 자유로운 영업 정책을 펼 수 있어야 우리 금융산업이 한단계 도약할 수 있다" 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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