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봐줘도 너무 봐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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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를 통해 5백억원을 이중으로 지원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현대상선은 지난 5일 1천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주간사와 인수사는 산업은행이고, 시장에 공시한 자금 용도는 '9일과 19일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상환용' . 그런데 현대상선은 이 자금을 받아 당장 급한 금융권의 빚을 갚았다.

현대상선은 뒤이어 정부의 회사채 신속 인수 방침에 따라 9일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 5백억원을 산업은행을 통해 차환(借換) 발행했다. 결국 '9일 만기 회사채 상환용' 5백억원이 이중 지원된 셈이다.

현대상선이 유가증권신고서 내용과 달리 자금을 딴 곳에 썼는 데도 금감원은 10일 '사소한 서류 착오' 라며 넘어갔다.

윤승한 공시심사실장은 이날 "유가증권신고서에 차환용이라고 적고선 실제로 운영자금으로 쓴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면서도 "제재 대상은 아니다" 고 말했다.

현대상선측은 "담당자가 잘못 쓴 것" 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증권업계는 현대상선의 행위를 명백한 공시 위반으로 보고 있다.

기업이 공시를 위반하면 금감원은 규정상 해당 기업(현대상선)의 담당 임원은 물론 주간사(산업은행)에 대해서도 문책할 수 있다.

특히 자금 용도에 대한 허위 공시는 지난해 일부 코스닥 기업들이 '운용자금' '회사채 상환용' 으로 공시한 뒤 회사채를 발행해 마련한 자금으로 주식을 사는 등 재테크를 일삼자 금감원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었다.

이런 판에 정부는 회사채 신속 인수 방침에 따라 오는 19일 만기가 돌아오는 현대상선의 회사채 5백억원어치도 산업은행이 인수하도록 이미 결정한 상태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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